종교와 인간

여성 신학, 하느님 어머니?

아난존 2021. 2. 16. 04:40

 

보편성의 영역이 점차 축소되는 시대에 여성 신학이라고 예외일까. 그리스도교가 선진문물이었던 시대가 저물고 있듯, 페미니즘이 진보였던 시대도 저물고 있다. 다수를 하나의 이론으로 묶을 수 없는 시대,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가 수시로 넘나드는 시대, 조변석개의 주체와 대상이 애매하고 모호해진 시대, 한 치 앞도 제대로 예측되지 않는 이런 시대에 태생부터 고대의 유물 같은 여성 신학이라니, 아니 여성 신학은 부흥기도 없었는데 바로 쇠퇴기라고?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브루지만(W. Brueggemann)은 그의 저서 <The Bible Makes Sense>에서 성서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하다. 왜냐면 그것이 우리의 삶을 기쁨과 온전함으로 이끌어 줄 신선한 시각을 통해 세계를 이해할 방법을 제공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지극히 온당하고 대단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왜냐, 그는 남성이고 민중 신학자니까. 응당 민중 속에는 여성도 포함되나 신학에선 애석하게도 여성은 상징적 존재에 머물러 있다. 성서가 쓰인 시대성을 고려해야겠지만 그간 성서는 여성들에게 해방과 구원을 위한 복음인 동시에 억압과 통제의 수단으로 악용돼온 것도 주지의 사실이라.

 

이러한 상황이 한국이라고 다를까. 이는 여성 신학자들에게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신학이란 주제 아래 모일 것을 요구한다. 특히 아시아에서 신학을 연구하는 여성 신학자들은 이중 삼중의 고리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서구의 폭력적이며 일방적인 근대성 아래 성장한 식민주의적 사관까지 더해져 여성이란 매듭을 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희정의 정리에 의하면, 아시아 여성 신학이 본격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이다. 서구의 지배 논리와 인식론적 패러다임을 그대로 반영하거나 재생산하는 서구신학이 여전히 보편적 신학으로 받아들여지던 상황에 도전, 3세계 민중들의 해방을 외치던 해방신학자들마저 여성들의 고통을 외면하자 각처에서 여성들은 독자적인 여성해방 신학을 들고나왔다. 아프리카계 여성들은 유럽과 미국의 중산층 백인 여성들의 페미니스트 신학과 구별되는 자신들의 신학을 우머니스트 신학’(Womanist theology)이라 이름 지었다. 히스패닉 여성들은 스페인어로 여성들의 여성 신학이라는 의미의 무헤리스타 신학’(Mujerista theology)을 들고나왔다

 

아시아 여성들 또한 아시아 여성신학’(Asian feminist theology)이라는 이름으로 서구로부터 유입된 페미니스트 신학뿐만 아니라 아시아 남성들이 주도하고 있었던 아시아 신학과도 구별되는 자신들의 신학을 이야기했다. 이처럼 아시아 여성들은 신학의 탈서구화, 탈식민화, 탈남성주의를 동시에 추구했다. 이는 아시아에서 여성 신학이 처한 위치를 잘 드러내 준다.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적 시각에서도 탈피해야 하며, 동시에 서구 중심적인 사유도 경계해야 한다. 이렇게 세 개의 지향성을 꼭짓점으로 아시아 여성 신학이 움직여야 한다는 데 반론의 여지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여성들끼리 모여 하느님 어머니를 찾으면 그게 진보이고 해방일까. 간혹 하느님 아버지가 가부장제의 소산이라며 하느님 어머니로 기도하는 여성 신학자들이 있다. 아버지는 안 되는데 어머니는 괜찮은가, 굳이 하느님이 부모여야 할까. 성서에 하느님 백성을 자녀라고 표현해서? 딸 대신 아내라거나 신부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럼 하느님 남편은? 하느님 신랑은?

 

탈남성주의는 위기 시에도 주도적인 여성이 되어야 하므로 못내 위험하다. 자칫 조직에서 나댄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 탈서구화는 서구에 대한 동경을 버려야 하므로 못내 아깝고 아쉽다. 유럽과 미국이 학문이든 사상이든 때로는 인간마저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바꾸자니 지난 세월이 부정당하는 것 같다. 탈식민화는 그동안의 생활 습관과 사유 방식을 통째로 점검해야 하므로 못내 힘에 부친다. 로마보다 더 로마 같은 한국 가톨릭이란 명제에서도 보듯 순종과 노예근성을 구분하는 일은 지지리도 까다롭기 그지없다.

 

그러니 하느님 어머니로 퉁치자. 하느님은 유일신인데 왜 아버지는 되고 어머니는 안 되냐는 항변으로 충분히 여성답고 학자답고 신앙인답지 않은가. 나는 한국의 여성 신학자들이 적어도 이렇게 생각하진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일상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는 남성주의와 서구화, 그리고 식민화에 싸우다 지치면 가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시로 남성의 지배 질서에 안주하고 서구적 사고에 순응하며 내면까지 자발적으로 식민화되어 있진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또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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