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록에 등장하는 대탕녀 ‘바빌론’은 “자주색과 진홍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치장”(묵시 17,4)한 여성이다. 자주색과 진홍색은 귀한 사람이 입는 비싼 옷의 색깔이며, 금과 보석과 진주도 사치스러운 장신구의 대표들이다. 따라서 그녀는 비싸고 귀한 옷감과 장식물로 몸을 두른 상태인데, 바로 그런 모습이 천박하고 부패함을 의미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는 ‘자주색’이 총 47번, ‘진홍색’이 총 13번 나오는데 이는 그만큼 자주색과 진홍색이 귀하고 화려한 복장을 나타내는 상징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유독 여성의 치장은 타락과 천박의 상징이 된 것일까?
1754년 바르방탄느의 아쉴르 신부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여기에 소위 여자라는 인간이 있다. 그것은 자연의 실수이며 거짓의 몸이고 자신의 육체를 싸구려 장식품으로 가득 찬 쓰레기통으로 만드는 원숭이에 불과하다.”
이처럼 여성은 외모보다는 내면을 단정히 할 것을 요구받았는데, 이런 여성의 치장에 대한 비난은 ‘신학대전’으로 유명한 성 토마스(1224/25?-1274년)가 “자연스러운 것은 신이 하는 일이고, 꾸며내는 것은 사탄이 하는 일이다”라는 말로 대변된다. 이는 교회의 오래된 입장으로 테르툴리아누스(약 155-230년)는 몸치장과 미색은 매춘으로 곧장 이어진다고 생각했고, 디온 크리소스토모스(약 40-125년?)는 딸이 타락의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어머니가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어머니가 딸을 감시하게 함으로써 여성의 치장에 대한 통제를 가정에서부터 관리하도록 내면화했다.
4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율리아누스(331/332-363)와 논쟁하면서 인간의 죽음과 성적 욕구는 자연의 섭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아담이 지은 죄에 대한 벌로서 인간 경험에 들어왔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시리아의 교부인 타티아누스(110-172)가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먹고 성적으로 깨우치게 되었다고 하면서 그 근거로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았다.”(창세 3,7)라는 성경 구절을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성적 욕망에 대한 금기가 금욕주의로 이어지면서 금욕을 방해하는 여성의 육체가 죄악시되었다.
성서에는 태초의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다. 여성은 육체와 동일한 존재로 영혼도 정신도 없는 동물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아담이 앞서 창조된 다른 동물에게 이름을 붙여주듯 여성에게도 ‘isha(여자)’라고 명명했다. 이 성서 텍스트를 근거로 ‘여자=동물’의 등식이 서구사회의 일반적인 통념이 되었으며,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인간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곧 인간과는 다른 존재로 낯설고 신비한 짐승의 영역에 속해 왔다고 하겠다. 그래서 여성에 대한 혐오와 숭배가 공존할 수 있던 것이다.
‘마녀’의 경우도 이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마녀라는 낯설고 신비한 존재는 사회가 불안하고 어려울 때 공동체 유지를 위해 번제 삼음으로써 사회를 단결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에 대한 역사적인 근거로 기 베슈텔은 1562-74년과 1583-9년 그리고 1623-8년 사이 세 번에 걸친 유럽의 한파와 마녀 화형이 극에 달했던 세 번의 시기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함을 들고 있다. 즉, 마녀라는 가상의 적을 인위적으로 상정해서 공동체 구성원의 불만을 잠재우는 수단으로 활용한 셈이다.
여자를 낯선 짐승으로 여기는 여성관은 19세기 교회에서도 나타난다. 여전히 여자들이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을 위험하고 쓸데없는 짓이라고 여겼다. 요컨대 여자라는 무가치한 존재에게 기만적이고 허울 좋은 외관을 꾸며 줌으로써 사악한 본능을 실현하도록 조장하는 일은 사탄을 돕고 악을 조장하는 일이다. 그런 이유로 남성에게는 고귀함을 상징하는 황금과 보석이 여성에게는 사치와 방탕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다면 21세기인 오늘날에는 그런 악습이 다 해소되었을까? 묵시록의 바빌론 대탕녀는 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때 동지였던 아군에게 짓밟힌다. 이런 비극적 인물을 더 이상 양산하지 않는 것, 그것이 과거가 우리에게 남겨준 현재를 위한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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