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사태를 보면서 광주가 연상된다는 한국인들이 많다. 민주주의가 대체 뭐라고 죽음도 불사하는 걸까, 인간을 신비롭게 만드는 지점이다. 인간은 평소에도 세렝게티 초원의 야생동물처럼 약육강식에 충실하다. 그래서 독재가 일상화된 나라의 군부는 자신들의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다. 강자가 초원을 지배하는 게 무슨 문제인가, 그게 세상사 이치고 순리인데, 그런데 독재 안 돼! 군부 독재 더 안 돼!를 외치며 민중이 목숨을 건 투쟁을 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라며? 그런 걸 교과서에서도 가르치면서 새삼 국내에서만 민주주의가 힘 위에 있는 거야? 헷갈릴 것이다. 그리곤 다짐할 것이다. 힘이 부족했구나, 더 큰 힘으로 누르자. 그래서 불안하다.
광주 민주화 운동만 그랬을까, 인간의 본능에만 충실한 부류들은 강압적인 힘으로 안 되는 일들이 납득되지 않는다. 인간은 동물이고 동물의 왕국은 약육강식의 세계인데, 원래 인류사가 그렇잖아? 그렇게 배웠고 배운 대로 살면서 충분히 몸으로 익혔는데, 이렇게 덜컥 걸려 버릴 때면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반성한다, 힘이 부족했구나! 그래서 결심한다, 더 큰 힘으로 누르자! 그래서 불길하다, 미얀마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힘이 신념 앞에 무너질까, 힘은 힘으로밖에 무너뜨릴 방법이 없으니.
지난주 줌으로, 한국천주교는 미얀마 사태에 어떻게 연대할까를 고민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있었다. 거기서 미얀마 현지 활동가는 실질적인 도움을 달라고 했다. 미얀마 군부를 돕는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과 각국 정부 및 종교계 인사들의 미얀마 군부 압박을 원했다. 맞다! 모여서 걱정하고 기도하는 것도 연대지만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일이다, 현지인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는 보다 현실적인 수단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
그리고 재한 미얀마 대표는 불교 신자가 89%인 미얀마에서 종교 지도자들의 행동이 미온적임을 지적했다. 불교계가 폭력 사태 중지를 요구하는 성명서 발표를 했는데도? 너무 늦게 나왔단다, 그것도 유명 인사는 빠졌단다. 40만 명이나 되는 스님 중 반만 민주화 운동에 동참해도 군부를 제압할 수 있다는 호소에,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이름 없는 민중의 죽음은 그 파장이 크지 않다. 영향력 있는 불교 지도자가 시위대에 앞장서 주면 미얀마 사태가 조기에 끝날 수도 있는 거였구나? 혹시라도 그런 인망 있는 지도자가 시위 중 죽는다면? 그건 일개 개인의 죽음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거니까.
탁발 승려로 이루어진 미얀마 불교는 신도와의 삶이 곧 본인들의 삶이다. 신도와 함께 먹을 때 같이 먹고 굶을 때 같이 굶는 게 탁발 승려의 수행 방법인 만큼 미얀마 시민의 많은 죽음과 스님들의 개별적인 참여 뒤에 이루어진 불교계 움직임이 마지못한 행동으로 보였을 법하다. 그나마 미얀마에서 불교가 가진 영향력 때문에 이마저도 가능한 거고 미얀마 천주교는 더하단다. 아예 교구 차원에서 시위 동참 불가, 천주교 상징 깃발 사용 금지를 공언했단다. 그러니까 기사에 나온 시위대 앞의 수녀님이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신부님 발언은 교단의 의지에 반하는 단독 행동이었던 것이다. 이게 뭡니까? 거기에 더해 박해받는 무슬림의 경우는 시위 중 체포되면 가장 먼저 죽임을 당한단다. 물론 이런 군부의 반인권적 행동에 대해 다른 종교 지도자들은 일절 언급이 없고.
미얀마 사태를 통해 본 종교 지도자들, 그들이 신봉하는 재단이 세렝게티 초원에 세워져 있고, 그들의 교리가 약육강식인 한 그들을 설득하는 일은 불가하다. 그들은 이미 민중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상태, 각자의 바벨탑 안에 갇혀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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