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홍카레오(홍준표의 홍카콜라+유시민의 알릴레오)는 둘의 인지도만으로도 세상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충분했다. 홍준표나 유시민이나 상대방 진영의 논객을 가장 압박하는 대표 주자들이니까.
물론 둘의 토론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논리와 근거로 우위를 점하는 유시민은 합리성을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논객이고, 상대를 면박 주어 기선을 제압하는 홍준표는 약육강식이 진리인 기득권층이나 가혹한 현실에 길든 백성들에게 후련함을 주는 논객이다.
그러나 둘은 과거의 날카로움에서 벗어나 유한 태도로 상대를 포섭하려는 연륜을 보였다. 그건 또 그것대로 각자의 지지자들은 상대를 비판하겠지만, 극단과 혐오가 지분을 넓혀가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진영을 대표하는 인사들의 토론은 분명 가치 있는 시도이다.
문제는 약육강식의 생태계 논리를 인간 사회, 또는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나 수용해야 하는가와 이미 억울하게 당한 사람들의 원한을 얼마나 풀어줘야 하는가이다.
소위 우리나라의 보수들은, 니가 약해서 당한 걸 어쩌라고, 그걸 왜 남을 원망해? 니 자신을 원망해야지, 약육강식이 세상 이치인데 그런 현실을 부정하며 정의 운운하는 건 위선과 허상 아냐? 하는 전제 위에서 사고한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란 존재가 마냥 짐승들처럼 자신의 위치에 멈춰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수가 믿고 있는 것처럼 출생과 더불어 정해진 것, 가문이나 재능이나 머리 같은 것, 그런 것만이 천부인권이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사회가 불안하고 사람들이 의심스럽다.
보수가 보기에 진보는 결국 자신들의 밥그릇을 넘보는 불한당들이다. 애초에 공정하지 않게 타고났는데 억지로 공정을 주장하니 도적놈들인 것이다. 무릇 사람이란 빈부귀천이 정해진 것인데 이를 작위적으로 흔들려고 하다니, 그런 놈들이야말로 천하에 사기꾼 아닌가.
그래서 유시민처럼 타고난 기득권층, 집안도 학벌도 머리도 재능도 흠잡기 어려운 사람이 진보일 될 때 보수는 가장 불쾌하다.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는 돌연변이처럼 전염되거나 유전될까 봐, 그래서 낯선 존재에게 느끼는 두려움은 곧 혐오로 전이된다. 즉, 유시민이 보수의 미움을 많이 받는 이유는 그가 너무 얄밉게 똑똑해서가 아니라 그가 너무 낯설게 똑똑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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