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의 태극기 부대는 어느 나라나 존재하는 극우라는 점에선 보편적 현상이고, 우리 시대가 가진 상징 중 하나란 점에선 특수한 현상이다. 그들의 존재는 소위 중도, 특정 정당에 소속되지 않고 선거별로 투표 정당이 달라지는 유권자가 보수진영을 지지하는 걸 망설이게 만든다. 태극기 부대는 기득권자의 우월감도 없고 상위층으로서의 자존감도 없기에, 기존 보수가 교만하고 비논리적일 때도 당당하게 보이도록 하는 사회적 아우라가 없다. 그래서 자한당이 태극기 부대와 동급이 되면 사회적 승자로서의 도도함과 우아함이 없는 탓에 중도의 마음을 끌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보수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진보에 끌리는가? 민주당은 종종 기득권자의 모습을 보여 자한당이나 민주당이나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한다. 지지자들조차 정기적으로 한 번씩 욱하게 만드는 건 그들도 결국은 가진 거 많고 잃을 거 많은 다수당 국회의원이기 때문이리라. 그럼 정의당이 대안일까, 왜 그들을 ‘입진보’라고 하는지 가까이서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그들은 칭찬이나 지지만 원해서 아주 작은 비판도 견딜 수 없는 비난으로 인지한다. 그러다 보니 내부에서 상처를 주고받느라 대중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바미당과 민평당은 아예 말을 말자. 주어진 밥그릇이 작을수록 밥상 너머의 세상까지 보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그래서일까, 보수 유튜버들의 조회 수가 높은 것이? 그들 중 일부는 나름 신선하기도 하고 나름 재미있기도 하다. 그런데 신기한 게 개별적으로는 사안에 따라 입장 차이가 존재하면서도 그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된 주장은 한결같이, 문재인이 너무 못해서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다. 유튜버 개인이 내세우는 이미지가 지적이든 섹시하든, 나라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격하든 차분하든, 전달하는 주제가 외교든 경제든, 선택한 내용이 국내문제든 국제문제든, 결론은 언제나 하나다. 문재인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 이렇게 단일한 대오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게 신비할 정도로, 그들끼리 서로 위장우파니, 위장우파면 어떠니 하는 싸움을 벌이다가도 결론은 문재인 때문에 나라 폭망이다. 어떻게 그처럼 일관되게 보수의 목차는 기, 승, 전, 문재인일 수 있는 것일까?
민주주의는 대통령에게 전권이 있지 않다. 대통령이란 지위는 국민의 주권을 대리하는 시한부 권력자로서 국민 다수의 뜻에 따를 때 빛이 나는 것이다. 비록 국민 다수가 항상 최고의 선택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최선의 정치제도라고 믿기에 다수의 선택이 최고가 될 수 있도록 의견이 다른 진영끼리 설득하고 타협할 뿐이다. 다수에 의한 결정이란 결국 다수를 위한 결정이기도 해서 어쩔 수 없이 소수는 감내해야 하는 게 생긴다. 대중의 눈높이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국민을 싸잡아 개, 돼지로 몰아가는 것은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태도가 아니다.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동고동락을 같이하는 것, 다른 나라로 이민 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것이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벗어날 수 없는 명제임을 인정하고 출발해야 한다.
내가 남들보다 좀 더 잘나고 가진 게 많다고 해서 국가라는 배경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는 거, 99%가 헐벗어도 나만 1% 안에 들면 행복할 거 같지만 절대 그렇지도 그럴 수도 없다는 거, 그게 인간 사회다. 어떤 재벌들은 돈이 없어서 성격파탄자가 되고 탈세를 하는가? 어떤 연예인들은 돈이 없어서 마약을 하고 성범죄를 일으키는가? 갑질이 넘쳐나고 왕따가 일상화된 우리 사회는 2019년 기준 GDP 세계 12위 국가다. 얼마나 더 성장해야 우리 국민은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경쟁과 성장을 행복의 최우선으로 꼽는 자칭 우파 유튜버들을 보면서, 그들을 지지하자니 정글 같은 세상에 던져질 우리 미래가 위험해서 불안하다. 그들 주장대로 좌파의 정의로운 척하는 위선과 가식도 물론 역겹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우리 질서, 강자 독식에 기회주의자 사기꾼들의 낙원인 우리나라를 이대로 유지하자는 것은 지나치게 위험해서 너무나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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