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관계

진보의 블랙홀 윤지오 vs 보수의 자중지란 손현

아난존 2019. 6. 17. 00:03




유튜브 세계는 경이롭다. 벌거벗은 임금의 보이지 않는 옷을 찬양하고, 동시에 그 임금의 벗은 몸이 보이지 않냐고 조롱하고, 동시에 벗으면 좀 어떠냐 맨몸도 패션이지 하며 방어하는, 이렇게 극단적으로 다른 입장들이 한꺼번에 극렬히 공존하는 세계, 구글이 만들어낸 엄청난 폭발력과 기이한 공생관계로 유지되는 2차원 평면의 세상.

 

그 핫한 동네에서 최근 최애캐가 되고 있는 인물이 윤지오이다. 정치 권력과 언론 권력과 부당한 연예계 관행에 희생된 장자연 배우의 억울한 원혼을 풀어줄 것이란 기대를 한몸에 받고 등장한 유일한 증언자윤지오, 그녀는 저는 유일한 증언자이지 유일한 목격자가 아녜요.”라고 말함으로써 불의에 침묵하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날렸고, 그녀가 투척한 이 미끼는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이라 지상파, 종편, 유튜브의 온갖 진보 스피커들이 걸려들었다. 일부 국회의원들의 공개지지와 윤지오 보호하기 국민청원 달성까지, 이 모든 것을 해낸 그녀는 급기야 스스로 후원재단까지 만들고 후원계좌도 열었다. 그러다 대국민 사기 의혹이 제기되자 캐나다로 출국해버리는 황당한 마무리,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수많은 고소, 고발들...

 

그렇게 윤지오는 현재 보수 유튜버들이 진보의 선동성과 미숙함을 공격하는 데 특화된 캐릭터로 등극했고, 그녀의 과거 동영상은 그녀에 대한 일말의 희박한 기대마저 연소시킴으로써 윤지오는 그야말로 진보의 블랙홀이 되어버렸다. 그녀를 도운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멍청하고 어리석고 순진한 바보들이 됐고, 이에 억울한 후원자들은 급기야 후원금 반환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 윤지오 사태는 어디로 흘러갈지 지켜볼 일만 남았지만, 일단 여기까지의 전개 과정은 그녀가 사적 야망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런 욕망 때문이라도 좋으니 장자연 사건에 대한 증언에서만큼은 의인이길 바랐던 소심한 사람들에게 무력감과 혐오감을 상처로 남겼다는 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런데 윤지오 정도의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진 않았으나, 보수 유튜버들을 멘붕에 빠뜨린 사람이 있었으니, 그 농락자는 바로 국회의원 손혜원의 동생 손현이다. 가족이 제기한 손혜원 부동산 투자 의혹은 보수 유튜버 몇에게 이슈와 조회수를 선사했지만, 그의 도박중독이 조명되고 후원계좌로 가는 후원금이 도박 빚을 갚는 데 이용된다는 말이 돌면서 보수 유튜버 간에 자중지란을 불렀다. 검증도 안 된 사람을 불러다 보수진영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고, 가뜩이나 가짜뉴스 생산과 정보 왜곡에 대한 의심으로 외연 확장에 어려움이 있는데...

 

, 이래서 유튜브는 경이롭다! 문제를 일으키고, 그 문제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 나락 때문에 알몸이 드러나고, 그 알몸 때문에 문제의 본질이 적나라하게 부상한다. 이슈 선점과 반론과 반론의 반론이 모두 가능한 세계, 이렇게 투명한 유리알 같은 세계가 또 있을까, 조회수와 구독자수가 돈으로 직결되는 만큼 진짜 자본주의가 뭔지를 가르쳐준다. 날것의 경쟁과 철저한 보상, 기존의 인지도를 이용하지만 새로운 경쟁자를 견제하지 못하는 시스템, 콘텐츠의 질과 정보의 유용성을 오로지 독자가 판단하는, 물론 독자는 여전히 대세 추종적인 대중의 속성을 버릴 수 없으나, 그래도 기존 매체의 제한적 선택성에 비하면, 현재 유통되는 모든 매체 중 유튜브는 충분히 신세계이다.

 

매체 특성상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나의 편견을 굳히는 확증편향의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나, 그보다는 가공되지 않은 정보가 그대로 품고 있는 격렬한 욕망과 치열한 경쟁 덕분에, 우리는 특정 사건에 대해 보다 입체적인 분석과 심층적인 이해가 가능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