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활극처럼 벌어지는 친일파 논란에 새삼 알게 된 것 하나, 우리나라 우파 중 일부는 기회주의를 처세술이라고 생각하는구나! 그렇게 보면 이완용도 뛰어난 처세의 달인이 된다. 원래 그게 세상 이치 아냐? ‘나’ 있고 국가 있지, ‘나’ 없이 국가 있어? 가식 떨지들 말아, 내가 출세하고 내가 부귀영화 누리고 그 영광이 내 후손에게까지 가는데, 나라가 뭐? 그게 뭔데?
친일이 왜 나빠? 일본이 선진국인데 보고 배워야지, 아직도 친일파 타령이나 하는 게 구시대 유물이야, 그래서 구한말 쇄국으로 가자는 거냐, 우리가 이 만큼 먹고 사는 거 다 일본과 미국 덕인데 이제 북한처럼 못 살고 싶냐, 아님 베네수엘라처럼 폭망하고 싶어? 이들의 이런 외침은 완전 진심이다.
이들에게 진짜 중요한 건 뭘까? 신비로울 만큼 보수 유튜버들의 논리는 질서정연하다. 기승전문재인, 이 논리를 수용하지 못하면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신도이다. 왜 그렇게까지 문재인 대통령이 싫은 걸까, 사람 좋고 싫은 거야 개인 취향이니 그럴 수 있다 쳐도, 모든 문제의 원인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는 게 좀 많이 과하긴 하다.
혐오감! 배타와 폐쇄의 감정이 난무하는 세상,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니까 우리만의 특수한 문제는 아니다. 그냥 작금의 지구인 다수가 현재 이런 혐오감의 포로가 돼 있다는 거, 이거 어떻게 설명할까?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자본이 우리의 욕망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서? 진짜로? 그럴 리가, 제대로 경쟁도 하기 싫어하면서 무슨, 수출규제가 신자유냐, 아님 화이트리스트가 신자유냐? 관세로 보호무역하고 국가가 무역에 개입하고, 그거 자본주의 형님이라는 미국이 제일 잘하는 거 아닌가?
21세기 최고의 이념은 ‘나’의 이익이다. 민주주의가 주입한 평등사상은 경쟁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지만, 막상 우리 개개인은 출생부터 능력과 자질 따위가 전혀 평등하지 않다. 그러니까 ‘나’의 존엄성은 한껏 높아졌는데 실제 현실은 불평등의 향연이란 것이다. 게다가 불공정한 경쟁으로 곳곳에서 억울한 넘쳐나도 이놈의 사회는 끄떡없이 잘도 굴러간다. 그러니 어쩌랴, 억울해서 통곡하고 싶지 않으면 강자가 되어야지.
일찍이 정경유착과 인맥과 뒷거래 짬짜미가 발달한 우리의 경우는 특히나 더하다. 뭐가? 경쟁이 불공정한 만큼 평등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평등에 대한 집착이 강한 만큼 기득권의 부조리에 대한 적대감이 크고, 부조리에 대한 적대감이 큰 만큼 이를 이용해 출세한 사람들에 대한 증오가 크다. 이 부분이 우리의 기득권 내지는 기득권을 동경하는 부류를 몹시 불편하게 만든다.
태초 이래 세상은 항상 세렝게티 초원이었어, 근데 뭐 아닌 것처럼 새삼 정의, 공정 같은 위선으로 가식 떨어? 소위 진보 좌파란 것들은, 자기 자식은 외국 유학 보내고 특목고, 자사고 보내면서 남의 자식은 못 가게 하는 놈들이잖아, 이거 위선이야, 그렇게 자기들은 잘 먹고 잘살면서 국민 우롱하는 게 진보 좌파니, 빨리 대깨문 신도에서 벗어나 ‘나’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라.
이게 보수 우파가 말하는 똑똑함의 정체다. 인간은 원래 그래, ‘나’의 출세와 성공이면 국가도 민족도 인종도 다 부차적인 거야, 그러니 이런 진리를 깨닫고 자신의 이익 우선으로 행동하는 게 바로 합리성이지, 누구나 다 그래, 나한테 잘하는 사람이 의인이고 내 밥그릇 챙겨주는 사람이 선인인 거야. 보수 우파는 이걸 인정하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게 사는 사람이고, 진보 좌파는 이걸 뻔히 알면서도 타인 앞에선 아닌 척 위선 떠는 사람이다. 그러니 멍청하게 위정자들한테 속지 말고 빨리 너의 욕망에 충실해, 여긴 세렝게티 초원이라고! 빨리 달려, 달려서 약한 것들을 잡아 먹어!! 안 그럼 내가 먹히는데?
그러니 당연히 기회주의는 처세술이지 나쁜 게 아니다. 내가 살기 위해선 약자들의 희생이 필요하다. 무리에서 가장 약한 것을 희생시켜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게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 생존 원리니까, 그걸 배우는 게 지식이고 교양이고 계몽인 것이다. 당연히 기회주의는 인간이 익혀야 할 처세술의 하나일 뿐, 그런데 마땅히 희생되어야 할 약자들이 평등을 주장하니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무지하고 무식해도 유분수지, 그래서 혐오감이 폭발한다.
세상 이치에 따라 마땅히 강약약강 해야 하는데, 나도 기꺼이 강자한테 머리를 조아리는데 감히 약자가 주제를 모르고 날뛰니 울화가 치민다. 그러니 어쩌랴, 약자들을 죄다 무릎 꿇릴 수밖에, 그런데 이런 약자들이 숭배하는 대상이 문재인인 것이다. 그러니 문재인을 넘어뜨려야 한다. 그래야 어리석고 대세 추수적인 대중이 현실을 자각하게 될 테니까.
우리가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한 방향을 바라봐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런 게 가능하지도 않고, 다만 ‘나’의 이익 외에는 모든 게 시시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늘어나는 게 무서울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운 건, 어릴 때부터 치약 튜브 짜듯 쭉쭉 짜지면서 배려 없는 경쟁에 시달려온 우리의 젊은 세대가 이렇게 보수 우파가 되어 가는 것이다. 그들에게 기성세대가 약자에 대한 배려니 공동체를 위한 양보니 따위를 감히 얘기할 수 있을까, 가정에서 학교에서 무차별 경쟁에 가혹하게 던져놓고, 경쟁에서 조금만 뒤처져도 잔인하게 비난해놓고 이제 와서? 글쎄,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시저는 루비콘강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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