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학교만큼 비리가 보호받고 감춰지는 데도 없구나, 하는 사실이 사람을 절망하게 만들었다. 굳이 푸코를 소환하지 않더라도 학교라는 권위의 장에서 이뤄지는 지식과 사회화 전반은 구성원들을 통제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마비시킨다는 거,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충분히 절실히 경험들 해봤으니까.
지금 장관후보자 조국에게 가장 아픈 돌팔매는 딸 입시와 장학금 문제일 것이다. 개인 펀드와 가족의 사학재단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발표하는 순간에도 어느 대학에선 대자보가 붙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불공정한 입시와 불평등한 장학금만큼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것도 없으니 그럴 만하다. 학생들을 광화문에 집결시킨 힘도 세월호가 2할이라면 정유라 입시 비리가 8할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당연하다! 당장 나에게 억울한 감정을 느끼게 하니까.
학교 밥을 오래 먹으며 생활한 사람들은 기득권 카르텔의 관행이 악행인지 모르거나, 또는 용서받을 만한 관행이라고 생각하는 습성이 있다. 왜? 불법은 아니니까, 그리고 불법은 아니게 절차상 조치를 해 놨으니까, 이런 관행들이 쌓여 기회주의를 처세라고 배운 학생들이 사회인으로 양성된다. 그만큼 억울한 사람도 많아지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내가 그 억울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못 본 척 모르는 척 살게 되는 것이다. 튀면 나만 다치니까.
사회가 온통 진흙탕인데 진흙 한 방울 안 묻히고 살 수 있을까?
그러니 진흙을 생산하는 주체가 아닌 이상, 진흙을 황금이라고 속이는 주도적 악인이 아닌 이상, 자신에게 묻은 흙을 볼 줄 아는 사람, 그래서 괴롭고 반성하는 사람에게는 그 흙을 털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린 이 진흙탕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그래서 예수도 말하지 않았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한 8,7).”고, 제발 죄 없는 자만 돌을 들어라, 그리고 참회하는 자에겐 사람이 약해서 또는 어리석어서 죄를 짓지 않도록, 적어도 지금보다는 약자가 살기 쉬운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
지금이 기회다. '조국'을 우리 사회가 미래로 나가는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그를 발판으로 이용해 다만 얼마라도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그에게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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