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관계

손혜원과 손석희를 한팀 만든 적폐들

아난존 2019. 1. 26. 00:54




계산하지 않고 자신의 직관에 의지해 행동하는 손혜원 의원의 행보는 기존 정치권 및 언론계 질서를 한방에 와르르 무너뜨렸다. 정치 9단이니, 정치는 생물이니 하면서 권력 지향적 기회주의를 미화시키고 정당화하는 정치적 화법이 역겨운 나 같은 소시민에게 손 의원의 망설임없는 언행은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를 주기에 충분하다. 손 의원이 국민 고모가 되는 순간이다. 더구나 기득권 언론계와 대놓고 맞짱 뜨는 여전사의 모습이라니, 대단히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다. 이런 기백 때문에 손 장군이란 별명을 얻었다.

 

마음속에 다른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많은 사회, 자신의 불순함이 드러날까 상대를 속이고 자신도 속이기 급급한 사회, 남도 나만큼 탁할 거라고 지레짐작하며  눈치 보면서 살면 대충 모나지 않다는 말을 듣는 사회에서, 손 의원처럼 공익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도 가치 지향적 신념을 유지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신념대로 살아도 한결같이 부자이고 사업적으로도 유능하다는 것이, 그런 그녀가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 이 모든 조합의 결과물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그녀가 만들고 있는 새로운 길이 어디로 통하지 알 수 없고, 기득권 카르텔이 쉽게 물러나지도 않겠지만, 이미 그녀는 손혜원이란 자기만의 브랜드로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치게 멋진 일이다. 대중이 그녀를 버리지 않는다면, 그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우리 사회에 없던 길 하나를 새로 낼 것이다. 그런데 이런 그녀의 배포와 용기가 하늘을 움직였는지 마침 손석희 사건이 같이 터졌다.

 

단아하고 정갈한 이미지의 손석희 앵커가 작정하고 덤벼든 세력과 엮여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현재 맞고소 상태라니 재판 진행 상황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상대가 기획적으로 풀었다는 녹취록을 들어보니 손 앵커가 함정에 빠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손석희의 폭행 인정을 강요하는, 지나치게 녹음 의도가 뚜렷한 그 녹취록에서 상대의 악의가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인 손석희의 위기가 손혜원 사태와 동시에 터져서 시대의 아이콘이 된 둘이 기존 기득권 적폐의 반대편에 함께 서게 됐다는 점에서, 결이 다른 두 사람이 각각의 물줄기로 흘러 역사의 강물 한 지점에서 만났다는 게, 우리 사회를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손석희 앵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일까, 그래도 기득권 카르텔의 동력인 기존 언론 권력에 맞서려면, 새로운 유형의 정치인 손혜원과 거물 언론인 손석희가 나란히 기존 언론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 오래되고 끈끈하며 괴물처럼 거대한 적폐의 일부라도 정리할 수 있는, 우리 사회로 보면 기적 같은 기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