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구석구석 빈틈없이 포진한 갑질 현상, 이게 고질병이 될 징후가 꾸역꾸역 보인다.
재벌가가 직원에게, 아파트 주민이 경비원에게, 손님이 종업원에게, 고참이 신참에게 등등 대체 누구 하나 이 촘촘한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갑질 현상의 원인을 자본주의의 폐해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왜? 돈이 곧 전지전능한 신인 세상, 이를 자본주의라고 정의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본주의의 본질이 뭔지는 논외이므로 차치하고, 돈 앞에서 인격도 품위도 가뿐히 벗어던지는 인간 유형을 태초 이래 인간은 항상 그랬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사람 내지는 돈을 쓰는 사람이 갑인 세상인 자본주의는 갑질을 발생시키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포악질을 부리는 갑들은 대체 왜 분노하는 것인지, 굽신거리며 갑질에 순응하는 을들은 대체 왜 이를 문제 삼는 것인지, 이를 자본주의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가 말이다. 돈이 알파요 오메가라면, 갑들은 본인의 절대권력을 우아하게 시전하면서 갑질에 도취하는 기쁨을 누리면 그만이고, 을들은 납작 엎드려 기꺼이 을질하면서 복종의 충심을 드러내면 그뿐이다. 그래서 혹자는 갑질보다는 계급질이 맞다고 새로운 용어를 투척했다.
그런데 계급질이라고 하면 문제가 더 모호해진다. 계급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직장에선 을이었다가 손님일 땐 갑이 되는 유동적인 계급을 과연 개념화할 수 있을까? 갑과 을의 관계가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바뀌는데, 이런 동태적 상황을 계급이라는 정태적 개념으로 해석하는 게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그럼 뭔데? 왜 노동에 대해 지불하면서 인격까지 샀다고 착각하는 건데? 왜 모두가 한 표를 행사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가 뭐라고 갑질하는 건데? 민주주의는 평등이란 거 몰라? 개념은 어디다 밥 말아먹고 폭군처럼 구는 건데?
그렇다, 바로 여기에 답이 있다!
민주주의의 성립 요건은 평등이라는 것, 1인 1표는 인간의 존엄성이 인간이란 존재만으로 거저 주어지는 거라는 것, 여기에 분노를 유발하는 요인이 있다.
재벌 앞에서 서민들이 쩔쩔매지 않으면, 손님 앞에서 종업원이 상냥하지 않으면, 집주인 앞에서 경비원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고참 앞에서 신참이 눈치 보지 않으면, 억울하고 화가 난다. 어린 시절을 통째로 갈아서 명문대 진학에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눈물겨운 노력을 사회가 보상해주지 않으면 억울해서 분노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그들이 분노하는 건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라 민주주의 때문인 것이다. 평등이라는 같잖은 이념으로 사회가 굴러간다는 게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내가 얼마나 어렵게 재벌 자리를 유지하는 건데,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일류대를 간 건데, 내가 얼마나 꾹꾹 참아가며 돈을 벌고 있는데, 내가 얼마나 처절하게 경력을 쌓았는데, 이런 고생 고생 생고생들이 듬뿍듬뿍 보상받지 못하면 억울해서 미치겠어서 분노가 치민다.
아직도 여적여, 여성의 적은 여성이란 말이 버젓이 통용된다. 왜? 남자들의 세계는 세렝게티여서 만나면 순식간에 위아래가 결정된다. 그러나 위계질서에 익숙지 않은 여자들은 수평적으로 관계를 맺으려다 보니, 앞선 고생녀들의 보상심리가 충족되지 않는다. 지위에 대해, 나이에 대해, 경력에 대해 상대 여성이 눈치 보지 않으니 울화가 치민다. 상대가 당당할수록 나의 고생 고생 생고생들이 무시당하는 거 같아서, 내가 기분 나쁜 만큼 경멸하고 밟아주고 싶다. 안 그러면 남성 중심의 사회에 편입하려고 노력했던, 상처로 점철된, 비굴하고 비겁했던 나의 과거가 부정당하는 것 같다.
바퀴벌레처럼 박멸하고 싶은 말, 평등, 갑질하는 사람들을 폭발시키는 뇌관은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인간이 나랑 맞먹는다고 느낄 때이다. 오천만 국민을 계량화시켜 일렬로 줄 세우는 사회에서 평등은 현실 용어가 아니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평등을 지향해야 한다고 부추긴다. 그러나 경쟁력보다는 경쟁심을 키우는 우리 사회에서 평등이란 액체괴물처럼 형태도 정체도 없는 그야말로 유령 같은 존재다.
그러니 어쩌랴, 경쟁심 대신 경쟁력을 키우려면 공정한 기회와 과정이 주어져야 하고, 과도한 보상심리를 유발시키지 않으려면 인성을 파괴할 정도의 초인적인 노력을 개인에게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즉, 죽어라 일하지 않아도 적당히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면 갑질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며, 갑질이 없는 세상에서 을질은 배려로 진화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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