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는 지상파의 보완재로 등장했다. 언론통제에 대한 저항세력으로 출발해서 최근 10년간 성공적인 대안 언론으로 자리 잡았다. 나꼼수를 필두로 주요 팟캐들이 여론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고, 인기 팟캐스터는 자기만의 팬덤도 갖게 되었다.
반면 유튜브는 지상파의 대체재로 작동하고 있다. 개인방송을 표방하고 출발했지만, 지상파 콘텐츠는 물론 기존 방송물의 요약판까지 등장하여 지상파를 위협하는 공룡으로 성장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유튜브에서 10억 뷰를 이뤄냈다. 이는 유튜브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더욱이 유튜브가 팟캐스트보다 시장이 넓고, 콘텐츠가 다양하며, 보상체계도 우수하다 보니 지금의 팟캐스트는 유튜브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런 만큼 팟캐스터는 부업으로 취미로 콘텐츠를 제작했다면, 유튜버는 전업으로 생계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차이는 생산자가 콘텐츠를 대하는 자세를 결정한다. 즉, 상품으로서의 완성도와 대중의 반응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도 다소 차이가 있다. 팟캐스트의 청취자는 팟캐스터에게 지식이나 정보를 얻기 원한다면, 유튜브의 시청자는 유튜버와 공감하고 교류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채팅창을 적극 활용하고, 아프리카 TV와도 연계해서 방송한다. 물론 청취자에게 보이지는 않으나 채팅창을 활용하는 팟캐스트도 있으며, 보여주기만을 목적으로 하는 유튜브 콘텐츠도 대단히 많다. 이는 개인방송이란 특성상 콘텐츠의 형식과 내용이 자유롭기 때문에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이다. 다만, 전형적인 특성 내지는 추세를 기준으로 팟캐스트와 유튜브는 구분될 수 있다.
그렇다면 팟캐스트는 소멸할 것인가? 물론 유튜브로 인해 타격은 받을 것이다. 그러나 TV와 라디오가 공존하듯이, 팟캐스트는 청취자에게 유튜브는 시청자에게 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며 공생할 것이다. 그렇게 점점 정보와 지식은 도서관에서 나와 놀이공원으로 이전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놀이기구를 타는 아이들처럼 무수한 콘텐츠들 사이를 기분 내키는 대로 유영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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