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관계

섬세한 사람으로 험한 세상 살아가기

아난존 2018. 12. 4. 20:40




섬세하다는 것은 사유의 가닥이 많다는 것이다. 메뉴판에 메뉴가 많으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처럼, 그리고 같은 메뉴라도 매운맛, 달콤한 맛, 짭짤한 맛이 있는 것처럼, 사유가 섬세하다는 것은 그만큼 선택할 수 있는 생각의 종류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유부단하거나 답답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섬세한 사람들은 타자의 화법을 습득하는 데 익숙하다. 100개의 어휘를 가진 사람이 10개의 어휘를 가진 사람에게 맞추는 이유와 같다. 빨간색과 파란색밖에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보라색을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라색을 말하면 빨간색 또는 파란색으로 상대가 이해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안 만들고자 보라색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섬세한 사람들은 오해를 많이 받는다. 감정의 빛깔이 다양한 사람은 예민하다는 인상을 주기 쉽고, 지식의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은 관념적이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물론 A면 다 같은 A, A+A-A가 아니냐는 지적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탕수육 하나를 먹을 때도 부먹이냐 찍먹이냐 기호가 나뉘는 마당에 AA-와도 다르고 A+와도 다르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공유된 가치의 전제 없이, 사고의 지류가 인정되지 않는 사회에서 다르다와 틀리다는 틀리다일 뿐이다. 그러니 어쩌랴, 아는 만큼 상처받는 게 섬세한 사람들의 몫인 것을, 그러나 섬세함이란 선물이다. 세공이 정밀할수록 좋은 그릇 아닌가, 원하지 않았어도 공짜로 선물을 받은 이상 선물을 싸고 있는 포장지를 치우는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