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말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상대가 내 말을 알아듣도록 하는 거? 그건 중요치 않다. 쏟아놓고 싶은 말이 있어서 말할 뿐 다른 목적 따위 없다. 타자와의 소통 욕구? 그건 말하기의 목적이 아니다. 말할 때 필요로 하는 조건은 오로지 토 달지 않고 들어줄 상대인 것이다.
그럼 글은 왜 쓰는가? 그건 좀 더 복잡하다. 표현 욕구는 기본이고, 소통과 공감 욕구에 인정 욕구까지 탐한다. 그러니 글쓰기에서 독자를 고려하는 건 선택 아닌 필연이다. 타자를 의식한 행위니만큼 타자의 눈치를 살펴야지.
이처럼 말하기와 글쓰기의 목적이 다른데도 이를 자꾸 혼동해서 수시로 타인과의 관계가 어긋난다. 상대가 나한테 말을 걸어올 때 그건 내가 궁금해서가 아닌데, 그 사람은 그저 자기 얘기가 하고 싶은 것인데, 말을 함으로써, 하고 싶은 말을 함으로써,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정화하며 스스로 위로받는 것인데...
그러나 우리는 대체로 우리를 드러내도 좋을 환경에 있지 않다. 그래서 말하기를 글쓰기처럼 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상대가 불편하거나 어려울수록 말하기는 글쓰기가 되고, 이에 익숙해지면 상대에게도 글쓰기처럼 말하기를 요구한다. 생각 좀 하고 말해, 너는 뇌가 없니? 같은 비난이 이에 기인한다.
말하기는 본래 생각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해야 맛이 나는 영역이다. 뇌가 아니라 몸이 하는 행위, 그것이 말하기이다. 연설, 강의, 방송, 발표 등 그런 공적 영역의 말하기는 소리로 글을 쓰는 행위이므로 별개고, 여기서 지칭하는 말하기는 개인 대 개인, 곧 사적 영역의 말하기를 말한다.
정리하면, 사적 영역에서 소통이란 주고받음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맘껏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 흐르는 물처럼 언어를 흘러가게 하는 것, 가둬서 고인 물처럼 썩지 않도록 하는 것, 정 못 알아 듣겠으면, 또는 듣기가 차마 힘들면, 흔적 없는 바람처럼 나를 스쳐가도록 하는 것, 그것이 대화의 자세이며 말하기를 훼손시키지 않는 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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