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관계

이수역 폭행 사건, 일촉즉발 폭풍전야

아난존 2018. 11. 16. 05:22





이수역 폭행 사건은 현재 경찰 수사 중이니 사건의 전말은 수사 결과를 기다려 봐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청와대 게시판에 가해자 남성을 처벌해 달라는 국민청원이 이틀 만에 30만 명을 넘었으며, 여혐 대 남혐 프레임으로 사건 세팅도 끝났다는 거, 이게 문제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제 전쟁만 남았다, 여자 집단과 남자 집단은 이제 무리 지어 싸울 일만 남았다. 세렝게티의 초원은 석양으로 물들고, 여자 집단과 남자 집단은 내일의 싸움을 위해 전력을 가다듬으며 적개심을 불태운다.

 

세렝게티의 초원에서 약자로 산다는 것, 참 고되고 빌어먹게 아픈 일이다. 인간의 문명은 참 대단치가 않아서 강자 한 놈 떠받드는 피라미드 구조인 약육강식 생태계에서 이 넘의 인류가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억울하고 분한 일 천지빽갈이다.

    

여자도 인간이라는 인식은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에게 낯설다. ? 남성 동족끼리도 경쟁하기 힘든 세렝게티에서 여자라는 생소한 종족까지 경쟁자로 받아들이자니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그러니 내 여자 아니면 다 적이다. 그리고 내 여자는 나를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 세렝게티의 생존 위험에서 피 흘리며 싸우는 건 나, 남자니까, 싸움에 패배해서 상처받는 것도 나, 남자니까.

   

상당히 합리적으로 보이는 남자들도 여성관에 있어서는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하다. 성녀 아니면 창녀, 그래서 목숨 걸고 지켜줘야 할 여자 아니면 기어오르지 못하게 밟아줘야 할 여자, 중세 때도 귀족 여성 아니면 마녀였듯이, 여자라는 존재는 실체적 진실 없이 허구의 이미지로 이루어져 왔다.

  

그래서 지금까지 여성들이 한 선택은? 남자들의 세계에서 생존하고자 성녀 곧 여신이 되거나, 그게 안 되면 창녀가 팔자려니 체념하며 살았다. 더러는 스스로 창녀가 되어 남자를 조종해 보기도 하지만 그래 봐야 그림자밖에 되지 못했다. 그러니 어쩌랴, 성녀도 창녀도 싫으면? 그런 여자들이 세렝게티의 룰을 익혀 남자가 되었다. 성녀도 창녀도 남자의 환상이니, 나 여자는 그냥 남자가 되어서 남자와 싸우겠다!? 염병하네, 이 대목에서 순실이 헛소리에 일갈하시던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이수역 폭행 사건이 여혐 프레임에서 여혐 대 남혐 프레임으로 전환된 건 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이다. , 이 여성들 대체 어쩌고 싶은 걸까, 여성이 일베 짓 하면 이건 그냥 한풀이니까 이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 그렇게 자신 있으면 차라리 남자랑 맞짱 떠서 통쾌하게 이기든가, 기껏 피 흘리는 피해자가 되려고 세렝게티에 겁 없이 뛰어들었는가, 약한 남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몰라서 그러는가.

 

미러링을 여성운동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이여, 세렝게티에서 남성의 룰로 싸우고 싶다면 남성 강자의 포지션을 잡아라, 아니면 남성 약자가 된다는 걸 자각하고 뛰어들어야 한다. 그리고 남성 약자는 여성 약자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자괴감과 모멸감을 느낀다는 걸 알고나 그따위 싸움을 시작하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 세렝게티에서 벗어나야 인간답게 사는 길이 보이지 않을까, 이에 동조하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짐승의 삶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고민해 보자는데 거기에 남녀의 구분이 꼭 필요한가,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대에 과거의 프레임을 가져와 복수하는 거, 하지 말자.

 

여자라면 알고도 차고 넘친다, 그 억울함이 뭔지. 살면서 성폭행까진 아니더라도 성희롱, 성추행 안 당해본 여자 없으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특정 남자한테 당했다고 모든 남자를 원수로 만들지 말자. 더불어 과거의 남자들이 그랬다고 미래의 남자들도 그렇게 만들지 말자. 이제 겨우 성폭력이 범죄라고 계몽되는 사회에서, 그간 이를 문제라고 생각도 안 해본 남자들에게 돌아올 다리마저 끊어버리면 어떻게 하겠단 말인가, 미러링하는 여자들이여!

 

감정의 손절매라는 것도 있다. 그게 정 안 된다면, 나를 괴롭힌 그 당사자만 꼭 집어서 혐오하자, 개인을 소속집단에 포함 시키는 거, 그거 굉장히 전근대적인 관점이다. 지겹지도 않은가, 연고주의도 징글징글한데 여기에 성별 갈라치기까지 굳이 해야 하는가, 그래 봐야 누가 좋을까, 바로 세렝게티의 강자들만 좋을 뿐이다. 그들이 남긴 썩은 고기라도 먹겠다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중단하라, 위태위태해서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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