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 탈출 이후 끊임없이 우상 숭배 문제로 내적인 분열과 갈등에 노출된다. 가나안 종교와 모세의 신앙을 혼합하려는 대중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둘은 신에 대한 이해에서 정반대의 세계관을 나타내는데, 그 대립의 핵심에 성교(Sex)에 대한 태도가 있다. 가나안 종교는 성교를 신성시한 반면 야훼는 본래 성적이지 않았고 성교 의식에서도 숭배되지 않았다.
바알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다산제의 범주에 속하는 신으로, 여름 가뭄의 절정기 때 못(죽음)에 의해 살해되었다가 아내 아낫에 의해 부활한다. 이 신화는 생명과 다산을 기원하는 가나안 신년제에서 매해 공연되었다. 그리고 공연 후에는 예배자들 간에 성스러운 결혼의 의미를 담은 제의적 성교행위가 이어졌다. 가나안 종교의 이런 제의 형태는 야훼 예배와 충돌하는 요소이다.
또한 아세라 목상을 세우지 말라는 명령 내지는 이를 파괴하는 장면이 구약에서 총 40회 등장한다. 이는 그만큼 아세라 숭배가 일반적이고 흔한 일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세라는 누구인가? 아세라(엘의 배우자), 아낫(바알의 누이), 아스타롯은 13세기 이전 가나안 지역에서 섬기던 대표적인 3대 여신이었다.
파타이는 아세라가 판관시대에는 야훼의 제단으로 상징되다가 왕정시대에 이스라엘의 신이 되었다고 본다. 이 같은 견해는 아세라가 바알과 결합되었다가 야훼와 결합된 자료에서 뒷받침된다. 핑컬스타인과 실버먼의 주장처럼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이 기원전 7-6세기의 포로기 시절에 강화된 것이라면, 그 이전까지 아세라가 야훼의 배우자로서 최고 여신의 위치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고고학자이자 사제인 드 보(Roland de Vaux)는 1965년에 출간한 『고대 이스라엘』(Ancient Israel)에서 성경 연구를 바탕으로 헤브라이 여성들에 대해 “이스라엘 부인의 사회적, 법적인 지위는 주변국들에 비해 열등했다. 부인은 남편을 바알, 즉 주인이라고 불렀다. 또한 아돈, 즉 주(主)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실상 노예가 주인을, 신하가 왕을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십계명에서는 부인이 소유물 가운데 하나로 간주된다. 부인은 평생 미성년자였고, 여자는 상속에서 제외되었다.”라고 설명했다.
가나안 지역에서 일반적이었던 여신 숭배가 이스라엘에서는 우상 숭배였다. 이는 이스라엘 여성들의 사회적, 법적 지위가 주변국들에 비해 낮았던 것과 관련 있어 보인다. 또한 금기는 통제와 관리를 수월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으며, 이를 통해 야훼 신이 유다교의 유일신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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