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록 목사에게 성폭행 혐의로 검찰이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검찰 측에선 반성의 여지가 없는 것도 20년 구형의 이유라고 했다. 왜 이 목사는 자신의 잘못을 모를까?
성폭력 문제를 일으킨 목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크게 알려진 것만도 가깝게는 정 목사, 전 목사가 있고, 알려지지 않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으레 교회에 존재하려니 하는 통념들이 우리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왜 교회는 이 지경까지 왔을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성서 역시 승자의 기록이다. 종교 권력이 세속 권력으로 이양되는 과정에서 마지막 판관이었던 사무엘은 초대 왕 사울에서 2대 왕 다윗으로 갈아탄다. 사울에서 다윗으로 왕권이 옮겨가는 과정에서 치열한 권력투쟁이 있었고, 다윗과 밧세바의 아들인 솔로몬 이후 결국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지고 만다.
여기서 왕권 계승의 정당성 여부는 논외로 하고, 바로 그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 자신의 충직한 부하인 우리야를 일부러 위험한 전장으로 보내 죽게 한 사건, 여기에 주목해 보라. 이후 밧세바 사이에서 낳은 첫 아이의 죽음과 다윗의 회개로 성서는 우리야 사건을 정리해버린다. 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다윗의 권력 남용과 신뢰에 대한 배신행위를, 다윗 같은 위대한 왕도 실수한다, 회개하고 하느님의 용서를 받으니 더 위대한 왕이 되었다, 이렇게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을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첫 아이의 죽음과 처절한 회개도 생략한 채.
더 기묘한 것은 도대체 지금이 왕권 시대도 아닌데 어떻게 목사의 권위가 왕보다도 막강해진 것인지, 우리 사회의 무엇이 이런 목사들을 양산하는 것인지 하는 문제다. 우주 최강 하느님의 권세를 대리하는 목사님이니, 그런 목사 말만 따르면 부자도 되고 건강도 보장받는다는 욕망 때문인 걸까? 교회가 아니면 도무지 우리 사회 어디서도 희망을 주지 않기 때문인 걸까?
그러나 이스라엘이 망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도 죄 없다 하지 않았다. 다윗 왕의 권세를 잊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를 죽였다. 왜? 예수는 세속의 권력자가 아니었으므로, 왕을 고대한 백성들에게 예수는 보잘것없고 비루했으므로,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지만, 이제 우리는 노예도 백성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자꾸 가짜왕을 만들어 그 뒤에 숨는 행위는 하지 말자, 그것은 적어도 민주 시민으로서 할 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
'종교와 인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 진보, 가난, 억울함 (0) | 2018.12.23 |
---|---|
지구라는 유배지, 한국이라는 교도소 (0) | 2018.11.07 |
가나안 종교와 우상 숭배 문제 (0) | 2018.07.14 |
고대 유다 여성의 지위 (0) | 2018.07.09 |
구약 성서에 나타난 ‘모성’의 형태 (0) | 2018.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