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돼지는 주인의 좋고 나쁨을 따지지 않는다. 주인의 인성을 탓하지도 않고 설사 주인이 악인일지라도 주인 곁을 떠나지 않는다. 먹이만 제때 준다면 그 먹이의 질과도 상관없다. 그런 점에서 개, 돼지는 배신 잘하고 이기적인 인간보다 충직한 생명체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의 인간들이 개, 돼지 대접에 안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밥만 먹게 해주면 고개를 주억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순하고 말 잘 듣던 국민이 몹쓸 시대를 맞아 변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인간은 참 상대적 동물이다, 사회 부정의는 참을 수 있지만 나를 무시하는 건 참을 수 없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진행될수록 인권이 논의될수록 분노의 총량이 증가한다. 반면 개, 돼지는 분노하지 않는다. 밥을 주는 사람이 주인이므로 도살장에 끌려가도 주인을 원망하지 않는다. 개, 돼지로 태어난 이상 사람 흉내를 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착한 짐승들.
진영논리에 갇힌다는 건 주인이 밥 주는 울타리 안에서 행복해하는 개, 돼지의 속성이다. 국민이 주인 되는 세상? 그건 기존의 주인 자리에 있던 각계각층 기득권에겐 주인을 무는 개, 돼지의 정신 나간 반란으로 보인다. 그러니 미친 개, 돼지는 몽둥이가 약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과 짐승이 겸상하면 안 되니까.
진보를 지지한다고, 진보적 사상을 가졌다고 개, 돼지가 아닌 것이 아니다. 물론 가진 것 없이 보수를 지지하는 사람들보다는 사회정의를 생각하겠지만, 이 역시 자신의 입지나 주변 조건에 의한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자신의 계층적 입장에 충실한 사람은 정직한 것이므로 미워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자신의 계층적 입장을 배반하는 사람은 뛰어난 사람이거나 충직한 개, 돼지이므로 역시 미워할 이유가 없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신들이 하는 짓을 모르나이다. 그래서 개, 돼지는 용서받을 길이 생긴다. 개, 돼지에게 공정이나 정의를 요구하는 건 무리니까, 그런데 자신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부류는 독사의 자식들이 되므로 심판받는다는 거,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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