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은 이슬람과 함께 페미니즘을 막는 최후의 방어진이라 할 만큼 여성 문제에 낙후돼 있다. 종교의 자유는 역으로 종교 내부의 폐쇄성을 보장하는 측면도 있으니 어찌 보면 전통과 관행을 중시하는 제도종교의 특성상 당연한 결과이다. 그래서 앤 소파(Anne Soupa)가 던진 리옹의 대주교 출사표가 여성 사제와 부제를 부정하는 가톨릭에 어느 정도의 파문을 일으킬지 궁금하다.
그녀는 왜 새삼 가톨릭의 전통에 반기를 들었을까? 적어도 두 가지는 분명하다. 하나는 프랑스 내의 가톨릭 권위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톨릭 내의 사제 권위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권력의 분산화 및 세속화에 따른 현대적 흐름에 적합하니 시대성에 맞는다. 그리고 시대성은 선악의 문제도 시비의 문제도 아니니 이건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 인권 문제라고 한다면?
모든 인간은 인간이라는 존재론적 가치만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래야 인종, 민족, 계층, 성별, 직업, 빈부 등등을 이유로 귀천을 따지는 게 천박하고 무지하며 악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말이다, 낯선 타자를 배척하고 혐오하는 인간의 역사가 태초부터 있었으니 만민평등은 유토피아고 지향점일 뿐이지만.
그래서일 것이다. 여성의 힘이 필요할 때는 위기 시나 퇴락 시였다. 이제 21세기니 달라질까? 여성 상위 시대가 온다고 우리나라 민족종교에서 주장해 왔으니 이제 패러다임이 변할까? 글쎄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 그럴까? 여전히 폭력적이고 약육강식이 진리처럼 통하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개인을 단위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만나는데, 신자유주의는 탐욕을 정당화함으로써 자본주의의 경쟁 단위를 집단화하고 민주주의의 적용 범주를 축소한다. 그러니까 지금의 현실, 양극화와 독과점의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에 있지 않고 인간의 탐욕에 있으며, 민주주의는 얼마든지 소수나 약자를 억압하는 다수의 횡포로 이어질 수 있다.
페미니즘이 이런 인간의 굴레에서 또 다른 굴레를 만들지 않으려면 새로운 세계를 보여줘야 한다. 여성이 강자가 된다고 좋은 사회일까, 그동안 약자였던 집단이 지배자의 위치가 되면 나아진 세상일까, 여성이 지도자가 되니 확실히 조직이 더 합리적이고 유연하고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굳이 성별 구분은 의미가 없다. 성별이 의미가 없으니 앤 소파가 리옹의 교구장이 되든 말든 그것도 의미 없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앤 소파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질서를 제시하고 새로운 역할을 수행해 준다면 페미니즘은 더 나은 세계로의 도약이 될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애초에 그게 아니라면 앤 소파의 역사적인 도전은 가톨릭의 쇠퇴기를 상징하는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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