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인간

IS 여성들과 82년생 김지영과 극우교회 여인들

아난존 2019. 11. 5. 10:56

 

 

 

 

한국의 2019년은 확실히 여성 인권이 전면화된 해이다. 성인지 감수성을 내세우면 불륜도 미투가 되고, 여성의 일관된 진술만 있으면 상대 남자를 가해자로 인정해주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남성들의 불만이 폭발하기도 했지만, 여성으로 살면서 성폭행까진 아니어도 성추행, 성희롱 같은 성폭력 한번 안 당해본 여성 찾기가 힘든 게 현실인 만큼 이런 과도기도 거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이해도 해본다.

 

이 와중에 82년생 김지영이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잘 팔렸고 곧 영국에서도 출간된다고 한다. 평범한 여성의 삶에 대한 보편적 공감대에 성공한 것이다. 남들 다 그렇게 살아, 하고 참아보지만 그렇게 교육받지 않은 세대라서 더 억울하고 서럽다. 남들보다 우아하고 화려한 삶을 꿈꾸라고 격려해줘 놓고는 막상 어른이 된 현실에선 남들만큼 피로하고 지치는 게 삶이라고, 주류가 아닌 다른 선택은 그만큼 기회비용이 훨씬 크다고 위협하니 그 간극이 클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주류 페미니즘에 반발하는 여성들이 발생한다. 여성이라서 격려받지 못했거나 여성이어서 삶이 편했거나, 우리네 삶이 표준화된 몇 가지 유형으로 깔끔하게 모두 설명되는 게 아니니 일일이 개별 사례를 다 들기는 어렵고, 어쨌든 대세를 거부했든 대세에서 밀려났든 표준화된 삶에서 벗어난 여성들까지 82년생 김지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만큼 보편성의 교집합이 적어진 시대라는 걸 전제하지 않으면, 쓸데없이 여적여를 소환하거나 남녀 간의 혐오를 부추기는 데 이용당하기 쉽다.

 

영국의 반극단주의 싱크탱크인 전략대화연구소(ISD)IS에 가담했다가 돌아온 영국과 네덜란드 소녀와 여성들을 인터뷰한 결과 그녀들의 선택에 다양한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자매애(sisterhood)의 호소, IS 국가건설 노력의 일부 또는 더 크고 신성한 무언가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욕망, 진실되고 순수한 이슬람 생활, 사회적으로 배제됐다는 느낌이나 차별의 경험, 서구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 사회와 부모에 대한 반항 등등(2019. 11. 5. 세계일보).

 

태극기 부대로 상징되는 광화문 집회에 극우 교인들이 결합하면서 드는 의문점, 한국교회의 성장이 기복신앙과 친보수세력으로 진행돼 온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처럼 노골적이고 저속하게 권력을 탐하는 목사에게 끌려다닌 적이 있었던가? 음지에서 후원하는 정도가 아니라 선두에서 정치구호를 외치는 현장에 교인들이 동원돼 거리예배를 보는 것, 그 안에서 여성 교우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역시 한두 가지로 정리되지 않는다. 각자 개인 사정이 다르고 경험치가 다르고 사고의 결이 다르니까.

 

다만, IS 여성들이나 82년생 김지영이나 극우교회 여인들이나 자신의 삶이 억울하고 서럽다는 거, 그래서 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고, 더 인정받는 삶을 살고 싶고, 그게 안 되면 작금의 이 현실을 견딜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거, 물론 남성이라고 다를까 항변할 수 있지만, 네가 아프다고 내가 안 아픈 건 아니니까, 그렇게 각자 나의 아픔에 매몰되다 보니 다수가 덜 힘든 세상을 만들자고 합의하기가 참 어렵다. 동시에 그 아픔의 조건이 또 서로 다르다 보니 사회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한 채 개인은 더 고립되고 있는 거, 그리고 이 틈을 비집고 기생하는 종교 양상들, 이게 성서의 묵시록에서 말하는 종말론적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