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한당 덕분에 동물국회가 한창이다. 차라리 식물국회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월급 값은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자한당이 보인 미투 악용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여성 의원 전진 배치를 몸싸움 전략으로 내세우고 그 와중에 자한당의 임이자 의원은 문희상 국회의장을 성추행으로 고발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말하노니, 참 가관이로다!
미투 운동은 약자와 소외된 자의 권리를 돌보는 것으로 비단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간의 현실에서 다수의 여성이 약자와 소외된 자의 처지에 있다 보니 여성 피해자들에 의한 미투가 선행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미투를 악용하여 남녀 간의 대립을 부추긴다면 이는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 모습을 예수님이 봤다면 뭐라 하셨을까,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마태 7,5).” 그러셨으리라. 작금의 우리 사회를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그건 바로 ‘위선자’들이다. 예수님이 그토록 증오하셨던 그 위선자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도 기득권층을 이루고 있다.
자기 눈의 들보를 외면한 채 남의 눈의 티를 심판하는 위선자들이 힘을 갖고 권력을 휘두를 때, 얼마나 많은 상처가 생기는지 우리는 익히 보아왔고 충분히 절감했다. 그러니 권력 투쟁의 수단으로 여성을 내세우는 행위를 중단하라. 당신들이 하찮게 이용하는 미투 때문에 정작 여전히 피해자인 어떤 이들은 숨죽여 울면서도 나서지 못하고 있다. 당신들의 사소한 권력 투쟁 때문에 정작 여전히 아프고 고통스러운 이들이 상처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위선자여, 미투 운동은 그렇게 가벼운 외침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결코 잊지 못할 수치스러운 기억에 대한 힘겨운 싸움이고, 그래서 그 누군가는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싸우는 과정에서 이미 잃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기도 한다. 그래도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면 그만큼 성폭력의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망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기득권자들이 권력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진실로 진실로 개탄스럽고 한심하고 역겨운 일이다.
성폭력 희생자의 용기로 시작한 미투 외침은 지나간 잘못과 관행을 제물로 바쳐 새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여는 제사 행위이며, 피해자들의 아픔을 기도문으로 올리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그러니 성폭력 피해자들을 우습게 만드는 일련의 모든 정치적 행위를 당장 걷어치워라. 왜냐하면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마태 7,6).”라고 성서가 이미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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