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과 ‘하나님’은 어떻게 다른가, 과연 다르긴 한가?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천주교 신부역을 맡은 김남길의 사제핏은 영화 “검은 사제들”의 강동원 사제핏을 다시 떠올리게 하며, 첫 방송부터 바로 인기 드라마 반열에 진입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신을 나타내는 용어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이다.
드라마 관련 기사에서 기자가 ‘하나님’이란 용어를 쓴 것이다. 그러자 댓글이 주르륵, 천주교에서는 ‘하느님’이 맞다, 기자는 공부 좀 해라, 천주교와 개신교는 다르다 등등.
천주교, 즉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이란 호칭을 쓴다. 하늘에 계신 분이란 의미로 우리의 기존 정서를 고려한 것인데, 애국가 가사 “하느님이 보우하사”처럼 우리에겐 하늘님을 뜻하는 하느님에 대한 친근감이 있다. 반면 개신교는 유일신을 강조해서 ‘하나님’이란 호칭을 쓴다. 하나뿐이신 분이란 의미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다른 종교, 다른 교단과의 차이를 선언한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구원은 우리에게만 있어, 달콤한 유혹이다, 배타성을 성장 동력으로 삼아 부흥한 집단일수록 내부 결속력이 강하고, 당연히 강해야 한다. ‘나’로 사는 것이 힘든 세상에서, ‘나’가 누구인지 생각도 못 해보고 살기에, 특별한 ‘우리’에 속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강해지는 것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랴.
‘야훼’가 ‘여호와’이고, ‘여호와’가 ‘알라’라고 한들, ‘천주님’이 ‘하느님’이고 ‘하느님’이 ‘하나님’이라 한들, 그게 바벨탑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타자의 용어가 이해되지 않는 건 그만큼 나의 용어에 대한 이해가 깊지도 넓지도 않기 때문이라, 소통은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다.
내 신앙이 옅을수록, 내 믿음이 약할수록 타자에게 날카로운 철책을 칠 수밖에 없다. 행여나 나의 담이 허물어질까, 그러면 나도 허물어질까, 멘탈이 약한 사람일수록 자기방어 기제가 발달하는 이치와 같다.
덧붙여, 열혈사제 드라마 댓글에 있는, 주임사제가 주교인가? 의복이 다르다, 수녀님이랑 신부님이 같이 식사하나? 우리 성당은 안 그렇다, 그 밑에 우리 성당은 그렇다, 천주교 신자인데 보기 불편하다 등등.
대체 왜들 이러는 걸까, 우린 문화를 문화로 향유할 만큼의 지적 소양도 감수성도 낮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모양이다. 우린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소속집단의 위치나 이미지로 가질 만큼 아직도 자존감 지수가 많이들 낮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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