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에서 약자의 자연도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간을 털 없는 원숭이라고 보는 관점에선 적자생존이 만고 불변의 진리니만큼 오직 생존으로 적자를 확인하는 것이 생물로서 최선의 존재 방식이다. 그러니 인성이니 존엄성이니 하는 건 역겹고 가증스러운 위선이며 가식이다.
조국 장관 문제를 다루는 자칭 보수 유튜브를 보면 특히나 여실히 드러나는데, 그들의 비난은 하나같이 일관되고 간결하다. 진보는 가식과 위선을 떤다는 것이다. 그래서 치를 떨고 조롱하며 온 힘을 다해 혐오한다. 위선자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진보 지지층은 그러니까 당연히 개, 돼지인 셈이다. 보수는 적어도 거짓말은 안 한다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보수는 정말 솔직할까? 그렇긴 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해 이익에 한없이 순종하니까, 그래서 강자에게 의심 없이 복종하니까, 그렇게만 보면 소위 한국의 보수는 그 단순성 면에서 영혼이 순정하기조차 하다. 얼마나 깔끔한가, 타인을 지배하고 싶고 사회에서 군림하고 싶은데, 뭐 다른 이유 있어? 그러려면 돈과 권력이 필요한데, 뭐 다른 이유 필요해? 뭐, 어쩌라고? 생태계 구조에서 맨 위를 지키는 것, 그게 모든 동물의 존재 이유 아냐? 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왜 아닌 척해?
민주주의? 만인은 절대 평등할 리 없는데, 그런데 진보라는 것들은 앞에서 평등을 이야기하며 뒤에선 호박씨 까니 세상 역겨운 집단 아냐? 이런 걸 모르고 속는 대중은 그래서 개, 돼지인 거고, 아무것도 모르고 휘둘리는 무지몽매한 무리, 그런 허접한 것들이 민주주의네 뭐네 해서 기어오르니, 저절로 “웃기고 앉아 있네, X신 같은 게” 하는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온다. 인간을 털 없는 원숭이라고 생각하는 보수 입장에선 민주주의가 같잖고 하찮고 짜증난다.
그럼 중도는 왜 흔들리는가? 중도는 대세에 약하고 물량 공세에 약하다. 권력욕이 강하진 않지만 권력의 피해자가 되고 싶진 않다. 앞서서 남을 짓밟고 싶진 않지만 소수 편에 섰다가 함께 짓밟히는 건 더 싫다. 불법으로 이득을 보고 싶진 않으나 합법으로 손해 보는 건 더 참을 수 없는 이 중도층은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회주의자가 되어버린다. 보수가 능동적으로 기회주의를 적극적 처세술로 본다면, 중도는 수동적으로 처세를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기회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과도한 경쟁 사회에서 자존심에 상처 입고 부당한 대우에 억울한 사람이 되기 쉬운 구조라는 거, 그런 사회이기에 자신은 기득권이 아닌데도 약자를 혐오하고, 내가 억울하게 피해를 볼까 봐 보수 편에 서고, 괜히 잘난 척하다가 미움받아서 손해 보고 억울한 상황이 생길까 봐, 그렇게 눈치 보는 자신을 차마 인정하기 어려워 기회주의를 정치적 중립이라고 포장한다. 그것이 우리 중도의 실체적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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