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인맥이라며 한껏 그악스럽고 눈치껏 표독스럽게, 자신의 밥그릇이 지상최대의 과제인 양 살았던, 그것이 너무 평범해서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무명의 일개 김 선생이 죽었다. 그 소식이 너무 생뚱맞아서 장례식에 가서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세렝게티의 초원에서 포식자가 되려고 그렇게 발버둥쳤건만, 그녀는 지나치게 강한 천적을 가졌던 것일까?
‘조국’ 때려잡기에 양팔 걷고 나선 언론과 검찰의 종횡무진 활극을 보면서, 그리고 여기에 동요되는 소위 중도파란 대세추수적인 사람들을 보면서, 세상의 다수가 저렇게 내 몸에 묻은 흙을 상대에게 던지며, 너 따위 내게 덤비지 말라고 고래고래 악을 쓰며 사는데, 태초 이래 이승은 항상 아비규환의 지옥이었는데, 왜, 그녀는 일개 무명의 시시한 목숨을 서둘러 소진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이건 추모도 연민도 뭣도 아니다.
누구의 죽음도 대단치 않은 게 우리 인간들 운명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 삶을 바꿔낸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되는지, 그 위대하다는 사람들조차 시한부 영향력을 발휘했을 뿐 인간은 지독히도 변하지 않는, 이상하고 기묘하게 이기적인 생명체인 것을, 그래서 인류란 괴물은 자기 발부터 스스로 뜯어먹으며 주저앉아 버리는 괴이한 행위를 역사적으로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언론도 검찰도 구조에서 내려오면 일개 기자 일개 검사이다. 그렇게 자연인 상태에서 인간은 죽는다, 무명의 김 선생처럼. 유통기한 있는 생명체들이 시스템 속에서 기계가 되기를 자처하지만, 기계 부품 버려지는 건 생물의 죽음보다 더 간단하고 사소한 일이다. 자가동력의 기계가 되어 스스로 작동할 거 같지만, 모든 생명체는 절대 무한동력의 기계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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