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스노보더란 수식어를 가진 클로이 김은 압도적 기량으로, 더욱이 그녀가 재미교포 2세라는 사실 때문에 언론에 더 많이 노출됐다. 이럴 때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생화학적 진리를 떠오르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현상이 하나 발견된다.
영국 BBC가 “그가 한국에서 태어났어도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까”라고 한국 젊은이들이 자조한다며 한국 SNS 이용자의 글을 인용해 보도한 것이다. 왜 영국 BBC는 무수히 많은 글들이 흘러가고 흘러오는 정보의 바다에서 이 부분에 특히나 주목했을까? 여전히 일부 백인들에게 황인종은 열등해 보이나 보다. 그냥 잘하면 잘한다고 감탄하면 그만 아닌가!
북한 응원단의 군무와 취주악단의 공연을 보도한 기사의 댓글들은 대체로 다수의 감탄과 소수의 불편감으로 갈린다. 그 불편감의 정체는, 얼마나 연습을 많이 시킨 거야? 하는 안쓰러움을 표방한다. 여전히 일부 한국인들은 북한에 대한 비교우위로 자신의 삶을 위로받나 보다. 그냥 잘하면 잘한다고 감탄하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 막상 칼군무란 말을 유행시킨 건 우리 한류스타들 중 아이돌들이다. 평균 10년 이상의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친다는 아이돌들, 그래서인지 그들은 못하는 게 없다. 노래와 춤과 연기에 예능과 체육까지, 그런 아이돌들을 보면 나의 나태한 삶을 반성하게 된다. 난 저 나이 때도 저러지 못했는데, 더 한심한 건 이 나이 때도 저러지 못한다는 것이다.
클로이 김의 부모는 스노보드를 타는 딸의 재능을 발견, 딸을 6살 때 스위스로 유학보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린 한국인의 뿌리 깊은 교육열과 다시 만난다. 물론 이런 조기교육의 성과물로 꼽히는 상징적 인물은 모차르트이니, 우리만의 이상스런 과열현상으로 치부할 건 없다. 그리고 사실 어마무시한 일사불란함을 자랑하는 응원으로 유명한 단체는 삼성과 신천지이다. 전자는 자본으로, 후자는 신앙으로 그 영혼을 갈아 넣은 통일성에 절로 숙연해질 지경이다.
당연히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명예와 소속감을 위해서든 돈과 인기를 위해서든, 국가를 위해서든 나 자신을 위해서든, 다만 그 굉장한 노력에 따른 결과에 딴지를 거는 건, 그 방향성이 뭐든 목적성이 뭐든 그건 그냥 비겁한 행위라는 것이다. 게으름을 찬양해도 괜찮은 조건에서 살고 있다면 그건 그저 행운일 뿐, 그것이 자신이 처한 현실적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안쓰럽게 볼 이유는 되지 못하기에 그렇다. ▣
'소통과 관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어준과 미투 프레임 전쟁 (0) | 2018.02.27 |
---|---|
아재와 개저씨 사이, 꼰대의 줄타기 (0) | 2018.02.22 |
김어준과 하태경, 그리고 우리 빌라 4층 아저씨 (0) | 2018.02.13 |
2018 평창올림픽과 공정성과 연아 (0) | 2018.02.11 |
왜 불행은 혼자 오지 않나 (1) | 2018.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