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관계

김어준과 하태경, 그리고 우리 빌라 4층 아저씨

아난존 2018. 2. 13. 21:10




우리 빌라 4층에 사는 70대로 보이는 택시 기사 아저씨는 너무나 당당하게 내가 아줌마 위해서 불편해야 되겠어요?” 하고 말한다. 그럼 날이 추운 탓에 홈통이 얼어 4층에서 세탁기를 돌리면 2층 우리 집 베란다로 물이 역류하는데 어쩌란 말인가, 1층 주차장 벽에 있는 홈통 보온 공사를 해야 한다는데, 공사를 해도 봄에 해야 해서 당장 올 겨울엔 조심할 수밖에 없다는데..... 겨울이라도 영상일 때가 있으니 그땐 상관없고, 영하일 때만 세탁기 사용을 자제하시고 정 해야 하면 뜨거운 물로 세탁하시란 요구에, 그 어떤 요구도 나의 자유를 막는 것이니 불가하단 태도, 그래서 반복해서 하는 항의 내가 아줌마 위해서 불편해야 되겠어요?” 하는 말.

 

오늘 아침 뉴스공장을 듣다 하태경의 우격다짐 무논리에 자지러지게 웃는 김어준에게 문득 의아심이 들었다. 북한 응원단의 미남가면을 당사자가 아니라는데도 부득부득 김일성가면이라고 우기는데, 듣기만 해도 가증스런 목소리와 저질스런 주장이 짜증나 죽겠는데, 나만 그런 건 아닌 듯 뉴스공장에 항의문자가 5000건이 넘고 앱이 다운됐다는데, 시종일관 김어준은 그 특유의 속내를 알 수 없는 과장된 너털웃음과 박장대소로 일관했다. 김어준은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평소 그의 강한 비위에 감탄하고, 동물적 감각을 경이롭게 여기는 내게도 김어준의 그 모든 색깔을 믹서기에 넣고 돌려버리는 웃음은 가끔 기이하다. 그는 그 웃음으로 무엇을 탈색하려고 하는 것일까?

 

며칠 전 나는 지인을 만나 우리 4층의 이웃 얘기를 하면서 나도 웃고 상대도 웃었다. 나는 그 아저씨가 일말의 수치심도 없이 자신을 방어할 때 왠지 화가 나지 않는다. 분명 내가 피해를 입었음에도 짜증조차 나지 않는다. 왜일까? 왜냐면 나는 그분에게 손톱만큼의 기대치도 없기 때문이다. 은연중에 나는 그 아저씨를 나랑은 많이 다른 사람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하태경에겐 왜 짜증이 날까, 그 역시 나랑 많이 다른 사람 즉 종류가 상이한 부류인데, 그러나 그는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위치에 있다. 하태경이 우리 빌라 이웃으로 타인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면 상관없다. 그러나 그가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시민들에겐 짜증을 주고 백성들에겐 저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하는 메시지를 주기에, 화가 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어준의 동물적 감각은 그 어떤 인간에 대해서도 하등의 기대 없음에 기인한 것일까, 그래서 여론의 프레임 전쟁에 그렇게 필사적일 수 있고, 불의에 지치지 않고 물고 늘어질 힘이 생기는 것일까, 유시민은 일찍이 항소이유서에서 분노하지 않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자라는 말을 인용해 삶에 지친 사람들마저 감동시켰다. 그로부터 33년이 지난 오늘날 김어준은 화내지 않고 지치지 않고 느물대며 세상과 맞서는 새로운 방법을 전파시켰다. 타인이란 변수에 흔들리지 않을 자존감, 그런 자존감이 가장 동물적 감성에서 나온다는 데 새삼 놀랍고, 이 지점에서 들뢰즈의 동물성과 기계성이 연대하고 있음에 번번이 감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