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피드의 돌

3화 아우라의 발견

아난존 2022. 1. 16. 20:23

이곳은 참 조용한 곳이구나, 나우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발소리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사방이 고요해서 자신이 움직이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조심조심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나우는 가온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랬는데 뜨헉!! 이건 또 뭐야?

아래층 로비 오픈 회의실 원형 탁자에 언제부터 모여 있었는지 모를 주민들이 빼곡하게 둘러앉아 있는 모습이 나우의 눈에 들어왔다. 홀로그램인가 싶을 정도로 미동도 없는 이들, 나우는 이들의 정체가 의심스러웠다. 살아 있는 인간들이 맞긴 한 거냐?

어서 오세요. 우리에게 할 얘기가 있으시죠?”

가온은 나우를 원형 탁자로 안내했다. 주민들이 나우에게 눈과 미소로 인사를 보냈다.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낯선 외지인에 대한 경계를 말끔히 풀어버렸다. 나우는 이들이 썩 이해되지는 않았으나, 바로 이런 이질감 때문에 기계 마을과 영성 마을로 나뉜 거니까 그러려니 했다.

저는 세 번째 기계 마을 인공지능 부처에서 행정관으로 일하는 나우라고 합니다. 저희 마을은 공학 기술자가 많아 지구탈출 이후 안정적으로 일상 복귀가 이루어졌습니다. 글로벌 협의체에 등록도 마쳤고 기계 마을들끼리 공동규약도 맺었죠. 기존의 국가 지도자 그룹이 지구상에서 모두 사라졌기에 이젠 평화만이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우는 첫 번째 기계 마을이 자신의 마을을 어떻게 초토화했는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기계 마을은 전기가 끊기면 모든 것이 정지된다. 평화에 익숙해진 세 번째 마을은 별다른 방어도 못 해보고 중앙 기계실을 점령당했다. 그렇게 마을의 전기가 모두 나가 우왕좌왕하는 상태에서 무차별적인 공격이 이루어졌다. 집집마다 침입한 첫 번째 기계 마을 전사들이 세 번째 마을 주민들의 발목에 전자발찌를 채운 것이다. 이 전자발찌는 부착이 되는 순간 자아를 잃고 노예 상태로 빠지도록 설계되었다.

저는 당시 지하 벙커에 혼자 있었어요. 솔라피드의 돌을 보관하는 마을 저장고이기도 하고 제 개인 연구실이 있는 곳이기도 하죠.”

나우는 자신의 라이프워치를 작동해 지하 벙커 연구실의 내부를 영상으로 보여 주었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에 실험 도구와 대형 스크린이 있는데, 대형 스크린에 솔라피드의 돌을 만 배로 확대한 그림과 솔라피드의 구성 성분을 분석한 도표가 보였다.

저는 자연석인 솔라피드를 인공석으로 만들 수 있는지 연구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의 돌에는 분석되지 않는 성분이 한 가지 있었죠. 저는 이것을 아우라라 칭하고 아우라를 얻기 위한 여러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실험에 열중하다 며칠 만에 벙커 밖으로 나왔다. 집에 가서 가족과 맛있는 저녁도 먹고 뜨거운 물로 목욕도 할 생각에 들떠서 육중한 벙커문을 열고 나왔는데, 그런데 평소의 공기가 아닌 것 같았다. 사람들의 움직임도 이질적이었고 표정도 낯설었다. 나우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집에 서둘러 돌아갔다. 다행히 남편도 딸도 무사히 집에 있었다.

! 나우~ 기다렸어.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엔초비 새우 오일 파스타를 만들어놨지. 엔초비는 오메가3가 풍부해서 당신처럼 머리를 쓰는 사람에겐 정말 좋은 식품이야. 게다가 새우가 냉동이 아냐, 갓 잡은 걸 시켰지. 쌩쌩하고 통통한 걸 잡아서 요리했지. 막 설레고 기대가 되는걸? 당신이 맛있어, 하면서 먹는 모습이 상상돼.”

남편의 호들갑에 나우는 가슴이 철렁했다. 이 사람 누구지? 내가 알던 티앙이 아냐, 티앙은 말수가 적은 사람인데, 나우는 남편 티앙이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엔초비 새우 오일 파스타 때문에.

미아는 어디 갔어?”

나우는 밀려오는 불안감에 딸의 행방부터 찾았다.

미아? 당신과 나의 딸 미아! 자나 깨나 공부밖에 모르는 그 공부벌레가 어디 갔겠어? 당연히 도서관에 갔지. 오늘도 밤새며 공부하려나? 왜 나의 님프들은 다 공부벌레인 거야? 그래도 오늘 저녁은 당신과 보낼 수 있어서 행복해.”

티앙은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우를 끌어안았다. 나우는 남편의 외모를 한 이 낯설고 기이한 생명체와 저녁을 먹고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이 사람과 관계를 가져보면 그가 누구인지 확신할 수 있을까 싶었기에. 티앙은 침대에서 알몸으로 있는 것을 좋아했다.

이윽고 샤워를 마친 나우의 도발적인 몸짓에 몸이 달아오른 티앙은 평소처럼 옷을 서둘러 벗었다. 그의 몸은 완벽히 티앙의 것이었다. 맹장 수술 자국도 그대로였다. 이 사람이 진짜 티앙이라면 며칠 사이에 이처럼 극적으로 인격이 바뀌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때 혼란에 빠진 나우의 눈에 훅 들어오는 게 있었다! 전자발찌? 아니, 그건 마치 피부와 혼연일체가 되어 문신처럼 보였다. 맙소사! 저게 대체 뭐람?

티앙, 당신 왼쪽 발목에 그거 뭐야?”

나우가 경계하며 물었다.

이거? 주민권이잖아? 설마 당신, 이걸 몰라서 묻는 거야?”

티앙의 반응에 나우는 자신의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거 같았다. 왜 마을 공기가 그토록 기이하고 낯설었는지도. 현재 주민들은 자신이면서 자신이 아니었다.

 

도움을 요청할 곳을 찾아 헤맸어요. 그러다가 이 마을에 아우라의 기운이 있는 걸 발견했죠.”

나우는 서 있는 사람들 마을의 주민들을 향해 간절하게 말했다. 지구탈출 시대 이후 기계 마을과 영성 마을은 워낙 주민들의 성향 차이가 커서 마을간 교류를 전혀 안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성 마을은 외부와의 접촉 없이도 운영 가능한 독자적인 자치 마을을 목표로 건설되었다. 그래서 영성 마을끼리도 교류 없이 지내왔다. 굳이 교류의 필요성이 없으니까.

반면 기계 마을은 탐욕스러운 자들이 모두 우주로 떠난 지구에서 새로운 형태의 번영을 구가하고 싶은 사람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고도의 전문 기술을 이용한 높은 생산력으로 다 같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보자! 인류가 늘 꿈꿔왔지만 한 번도 이뤄보지 못한 지상 낙원, 이를 목표로 달려온 결과 어느 정도 그 꿈이 실현되는 것 같았다. 누구든 원하는 만큼만 일하고 필요한 만큼만 배웠다. 그래도 충분히 살만하니까. (4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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