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피드의 돌

1화 지구탈출 좌절의 시대 이후

아난존 2021. 11. 27. 14:32

 

서기 2300, 지구는 기후 환경의 악화로 소수의 사람만 살아남았다. 우주로 나가려던 200년 동안 지구탈출 계획은 번번이 틀어져 이젠 그 시도조차 못 하고 있다. 지구 밖의 다른 행성에 희망을 걸고 머스킹 우주선을 탔던 사람들은 그대로 소식이 두절, 그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지구인들은 2100년에서 2300년까지 그 200년간을 지구탈출 좌절의 시대라 기록한다. 그렇게 인류는 800년간 유지해온 제국주의 시대를 강제로 종료하게 되었다. 자산가와 권력자가 아니면 머스킹 우주선을 탈 수 없었기에 200년간 지구는 그들을 우주 신민지 개척이란 명목하에 우주로 보냈고, 지구는 자연스럽게 소규모 공동체 단위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태양이 정오를 지나고 있어. 태양과 일치할 시간이야.”

밭에서 일하던 무리 중 누군가 속삭였다. 뿌연 하늘 사이로 태양이 시간의 탑 꼭대기를 비췄다. 사람들은 각자 하던 일을 멈추고 태양과 일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시간 동안 서 있는 사람들 마을은 모든 것이 정지된다. 그들은 두 팔을 벌리고 고개를 든 상태로 자신에게 허락된 태양 빛을 받아들인다. 그 빛은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다. 태양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으며 서 있는 사람들, 그래서 이들 마을 이름이 서 있는 사람들 마을이 되었다. 이 마을은 생존을 위한 진화에 성공한 경우이다. 이들은 거의 먹지 않고도 태양 에너지에 의해 생명 유지가 가능하게 진화되었다. 이들이 밭에서 일하는 건 육체를 이용해 수확물을 거두는 작은 즐거움을 얻기 위함이지 생존을 위한 필수 사항은 아니다. 이들은 말하지 않고도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하루는 고요함으로 지나가고 이들의 일상은 단조로우나 주민들은 이 삶에 만족했다. 더 잘 먹기 위해 애쓰고 더 잘 살기 위해 경쟁하지 않아도 되기에, 이들은 지구탈출 좌절의 시대도 그 이전의 시대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태양이 시간의 탑에 그림자를 길게 드리울 시간, ‘서 있는 사람들 마을주민들은 각자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려고 밭에서 하던 일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윙킥을 타고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사람이 보였다. 뭐지? 누구지? 주민들은 오랜만에 찾아온 낯선 손님이라 경계심을 갖고 손님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상황이 급박해 미리 전보를 띄우지 못했습니다. 이 마을의 지도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상당한 고품질의 윙킥을 타고 온 것으로 보아 손님은 기계문명의 마을에서 온 듯하다. 주민들 무리 중 한 명이 손님에게 말했다.

저희 마을엔 지도자가 따로 없습니다. 대신 계절별로 돌아가며 안내자의 역할을 맡습니다. 지금은 제가 안내자이니 제게 말씀하시죠.”

손님은 이 마을의 시스템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듯 선뜻 말하기를 꺼렸다. 주민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기밀을 얘기하라고?

저희는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게 따로 말씀하셔도 모두에게 전달된다는 얘기죠. 우리 마을 주민들끼린 비밀이 없습니다.”

손님은 안내자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안내자가 계속 망설이자 주민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불편해하시는 것 같아 주민들을 먼저 보냈습니다. 이제 전할 말을 말씀하시죠. 우리 마을의 태양이 완전히 지려고 합니다. 우리는 어둡기 전에 잠자리에 듭니다.”

정말 이들은 소리 내지 않고도 교감이 되는 사람들인가? 손님은 믿기 어려웠으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마냥 부인할 수만은 없었다.

죄송합니다. 초면에 결례가 많았군요. 저는 세 번째 기계 마을에서 온 전령으로 이름은 나우라고 합니다.”

나우는 주먹 쥔 손을 펴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보여 주었다.

저희 기계 마을들은 지구탈출 시대가 지나면서 더 많은 기계에 의존하게 됐습니다. 황량한 삶의 조건에서 기계만큼 능률적인 것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공기를 정화하고 깨끗한 물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었죠. 지구변화가 기후 재앙으로 닥친 탓에 그것만큼은 손쓸 도리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이 돌을 발견하게 되었죠. 이 돌을 몸에 지니면 우리 몸 안의 수분을 정화해주고 기도로 넘어가는 공기 중의 미세먼지도 제거해 주죠.”

안내자는 나우가 보여 주는 돌을 만져 보았다. 은은한 빛깔을 제외하면 여타의 원석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거기다 익숙하다?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중앙산 어귀 호수 주변에 있는 돌들과 비슷한데!

이런 돌이라면 우리 마을에도

순간 안내자는 서 있는 사람들 마을이 위기에 빠졌음을 직감했다. 안내자는 나우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얼마 만에 되찾은 평화인가, 우리 마을을 지켜야 한다! 안내자는 뇌파를 이용해 블루 경보를 주민들에게 보냈다. 대기 신호였다. 주민들은 각자 자신의 집에서 블루 경보가 레드 경보로 바뀔 것에 대비했다. 서 있는 사람들 마을이 생기고 처음 갖는 긴장감이 어둑어둑한 하늘을 딱딱하게 굳어지게 하고 있었다. (2화에서 만나요~)

 

 

'솔라피드의 돌' 카테고리의 다른 글

4화 동요하는 사람들  (0) 2022.11.19
3화 아우라의 발견  (0) 2022.01.16
2화 나우의 전언  (0) 2022.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