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인간

교회가 현장 예배를 고집하는 이유

아난존 2020. 3. 17. 19:02



코로나19 확진자가 46명이 나온 은혜의 강 교회 목사는 앞으로 목회할 자신이 없다며 울먹였다. 죄송하다며, 분명 죄송한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단 두려움이 더 컸을 것이다. 선민의식이 무너졌을 때 느끼는 공포감, 그건 사회적 지탄보다 더 무서운 것이기에.

 

신천지가 부른 참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부 교회들이 현장 예배를 고집하면서 코로나19 확진자를 양산하는 메카로 떠오르고, 급기야 시민단체들은 지자체에 지역 내 교회 예배를 금지해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종교인이라면 이 사태가 얼마나 참담한 것인지 자각해야 한다.

 

그러나 그럴까, 대형교회는 온라인 예배 인프라가 있으니 안심하고, 천주교는 중앙권력의 결정에 의지하니 안심하고, 눈치 보며 예배를 드렸던 교회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안심하고, 문제의 신천지마저 이 사태에도 남아 있는 신도들은 마귀의 시련을 이겨냈다고 안심할 것이다.

 

종교인으로 성장한 사람이나 종교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평균적인 대중보다 어휘량이 부족하다. 더구나 본인이 속한 교단의 전문어에 익숙해 있어서 교회 밖의 언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하나님이 선택하여 불러주신 선민이니까.

 

돈 때문에 현장 예배를 고집한다는 압도적인 댓글을 보면서, 맞는 말이다, 작은 교회는 당장 헌금이 줄면 운영이 안 되니까, 대형교회만큼 빠르게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고 계좌이체로 돌릴 만큼 행정력이 없으니까, 그러니 돈 때문이란 비난이 틀리지 않는다. 다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공금개념이 없던 수녀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던,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어!!” 그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건 박근혜의 결백 주장도 결국 이 논리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선민인데, 나를 위해 돈을 쓴 게 아닌데, 감히 선민도 아닌 것들이 나를 재단하고 심판해? 짐이 국가인데, 짐의 결정은 모두 국가를 위한 건데, 감히 어리석은 백성 주제에 짐의 고귀함을 짓밟아?

 

아는 만큼 보이는 건데, 그 아는 세계가 좁으니 아는 언어가 적고, 아는 언어가 적으니 외부와의 소통이 어렵다. 못 알아들으니 두렵고, 두려우니 적대시한다. 그래서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외부는 다 사탄이고 악당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