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펭수의 본체, 그러니까 인형탈 속의 사람이 누구냐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네티즌들은 유튜브의 어마어마한 자료를 이용해 펭수의 자랑인 요들송을 똑같이 부른 유튜버가 자이언트 펭TV 로고 송 저작권자라는 것까지 밝혀냈다. 대단하다, 숨어 있는 셜록 홈즈가 널려있는 세상. 이에 팬들은 펭수는 펭수일 뿐 본체를 캐지 말라고 항의했는데, 이는 평소 ebs의 지독한 캐릭터 세계관을 좋아하는 팬들 입장에선 당연한 요구다.
2003년 일본에서 방영된 ‘겨울연가’는 배용준을 ‘욘사마’로 만든 기념비적 작품으로 한류의 문을 화들짝 열어젖혔다. 이때도 일본의 욘사마 팬들이 좋아한 건 배용준이란 인간 자체가 아니라 겨울연가의 강준상과 동일시되는 배용준이었다. 그래서 부드럽고 애틋한 이미지의 욘사마는 열렬히 소비돼도, 남성미 철철 흐르는 근육질의 배용준이나 강인한 무사 배용준은 외면받았다. 왜? 일본 팬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겨울연가의 창백하고 우수에 찬 욘사마니까.
이미지가 곧 상품 가치인 스타급 연예인이 자신을 캐릭터화하는 건 당연하다. 아이돌의 수더분함, 털털함은 그것까지 이미지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일반인도 그런 면이 없지 않다. 10년 연애해서 결혼했는데도 결혼생활은 다르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팬들이 스타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이돌’의 원래 뜻이 ‘우상’이고, 우상이란 용어에는 맹목적인 숭배의 의미가 있으니까, 대중의 기대를 저버린 스타에게 또는 규정된 이미지를 깨뜨린 아이돌에게 등을 돌리는 건 흠집 난 상품이 헐값에 매매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어떤 아이돌이, 저를 있는 그대로의 저로 사랑해 주세요, 한다면 그것은 소비자 윤리에 도전하는 과한 요구일 수 있다. 가족 간에도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가가호호 그 사달이 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아는가, 성서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외침 하나를 뽑으라고 한다면 그것이 “우상숭배는 안 돼!”라는 것을, 우상은 진짜가 아니라고 피를 토하며 주장하지만 그런 호소가 먹혔던 시대는 없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유대인들은 그놈의 우상숭배 때문에 민족적으로 작살이 난다. 그럼 현대의 우리는 뭐 다를까? 자기 자신과 멀어지게 하는 모든 것, 그게 돈이든 권력이든 사람이든 그건 다 우상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맹목적 숭배 대상이 곧 우상이니까.
우리의 이런 우상숭배 심리를 마음껏 공인해주는 현상, 스타나 아이돌에 열광하는 문화, 그것은 타인에게 무해한 범위 내에서 얼마든지 사회가 용인해주는 사적 영역이다. 공동체의 집단환상을 만족시켜줄 존재, 그건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오호의 문제일 뿐, 그리고 문화적 우상숭배가 종교적 우상숭배보다 공동체에 유익하다면 종교는 문화에 기꺼이 바톤 터치를 당하는 게 진화적 순리다.
그런데 펭수의 본체로 유력시되는 유튜버의 과거 어떤 한 장면으로 인해 본체를 교체해달라는 일부 팬들이 생겼다. 펭수 캐릭터는 버릴 수 없지만 본체를 생각하면 기분이 나빠지니 바꿔 달란다. 여기서 문제는 펭수 캐릭터와 본체는 다른 인형탈과 달리 일체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팬은 본체의 인성을 알고는 좋아할 수 없다며 손절매하겠다고 선언했다. 혹자는 말한다, 정확한 사실도 아닌데 왜 뇌피셜로 매도하냐고, 그리고 펭수는 본체와 상관없는 그냥 펭수라고, 그러나 펭수는 우상이기 때문에 작은 흠도 어떤 열성 팬들에겐 상처를 입힌다.
100만 구독자 달성 이벤트 방송을 하는 동안에도 구독자 증가에 가속도가 붙는 펭수의 인기가 쉽게 사그러들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궁금하긴 하다. 펭수의 본체는 캐릭터 펭수로서 얼마나 버틸지, 그리고 언제까지 대역으로 만족할지, 더하여 본체가 공개돼도 팬들의 펭수 사랑에 변함이 없을지, 캐릭터와 연기자를 일체화시킨 ebs의 놀라운 모험이 가 닿을 종착지가 어딜지 무척 흥미롭다.
'종교와 인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라와 하갈을 대하는 하느님의 방식 (0) | 2020.02.16 |
---|---|
창세기 1장과 2장의 창조 순서 비교 (0) | 2019.12.08 |
새 하늘 새 땅이 세렝게티의 무저갱에서 열리다! (0) | 2019.11.29 |
하젠휘틀의 ‘신’개념으로 본 세월호 참사 해석 (0) | 2019.11.27 |
IS 여성들과 82년생 김지영과 극우교회 여인들 (0) | 2019.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