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좋은 날입니다. 두 손으로 잡으면 딱 알맞은 크기의 노란 고무공을 던지며 아이들이 강가에서 놉니다. 노란 고무공은 이 아이 손에서 저 아이 손으로 휙, 휙,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느라 머리가 핑핑~ 돕니다. 노란 고무공은 너무 어지럽습니다.
이때 마침 바람이 불어오네요. 노란 고무공은 바람에게 부탁합니다.
“날 저 강 위로 데려다 줘.”
바람이 갑자기 씽~ 하고 힘을 쓰니 노란 고무공이 강물 위로 털썩 떨어집니다.
아이들이 아쉬워서 고함치는 소리가 소란스럽게 뒤에서 들려옵니다. 그러나 노란 고무공은 모른 척하고 강물에게 빨리 움직여 달라고 부탁합니다. 아이들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자 노란 고무공은 느긋한 마음이 되어 주변을 두리번거립니다.
“아아,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강물 위에서 산들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노란 고무공은 처음 느끼는 행복감에 빠져 듭니다. 이런 게 세상구경이란 거구나, 감탄을 연신하며 둥실둥실 강물에 몸을 맡긴 채 마냥 즐겁습니다. 그렇게 흘러가다가 노란 고무공의 눈에 쉬지 않고 하늘하늘 움직이는 코스모스가 보였습니다. 노란 고무공은 여기서 잠시 쉬어가고 싶어집니다. 강물이 노란 고무공을 강기슭에 내려줍니다. 노란 고무공은 떽떼굴 굴러서 코스모스에게 다가갑니다.
“너흰 참 예쁘게 생겼구나!”
노란 고무공이 코스모스의 아름다움에 감탄합니다.
“우린 원래 예뻐! 항상 예뻐!”
코스모스가 가느다란 몸을 흔들며 뽐냅니다.
“나랑 같이 여행하지 않을래?”
노란 고무공이 코스모스에게 말합니다.
“우리처럼 예쁜 꽃들은 다른 데로 가면 안 돼.”
코스모스가 당연하다는 듯 말합니다.
“왜?”
노란 고무공이 이상해서 묻습니다.
“예쁜 꽃들은 사랑받아야 해. 그래서 같은 곳에 있어야 돼.”
노란 고무공은 코스모스의 대답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행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아 더 이상 권하지 않기로 합니다.
“또 놀러 올 거지? 넌 우리를 결코 잊지 못할 거야. 우린 언제나 예쁘거든.”
코스모스가 노란 고무공에게 작별인사를 합니다. 노란 고무공은 자기가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지 약속할 수 없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둡니다. 앞일은 잘 모르는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노란 고무공은 다시 떽떼굴 떽떼굴 굴러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새가 노란 고무공을 부리로 콕, 찍어 보는군요.
“아얏! 난 먹잇감이 아니라고, 이 바보 새야!”
노란 고무공은 커다란 새에게 따집니다.
“미안, 그럼 넌 뭐니? 그리고 난 바보 새가 아니고 독수리야.”
독수리가 노란 고무공에게 말합니다.
그런데 노란 고무공은 자신이 뭔지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날더러 ‘공’이라고 하던데, 그게 정말 나일까?”
노란 고무공은 오히려 독수리에게 되묻습니다. 독수리는 참 안됐다는 표정으로 혀를 차며 말합니다.
“쯧쯧, 네가 뭔지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 너야말로 바보 공이구나!”
노란 고무공은 독수리가 말한 대로 자신이 진짜 바보가 된 기분이 들어 풀이 죽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미안해진 독수리는 노란 고무공에게 하늘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제안을 하네요. 노란 고무공은 금방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늘을 날 수 있다니, 그런 건 생각도 못한 일이었거든요. 독수리는 두 발로 노란 고무공을 움켜쥐고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아~, 이건 정말 기분이 좋은데! 하늘을 나는 건 아주 멋진 일이야!”
노란 고무공은 저절로 감탄이 튀어나옵니다. 진정하려고 애써도 자꾸만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래? 하늘을 나는 일이 그렇게 멋지단 말이지?”
독수리는 날마다 하는 일이라 그런 생각을 못 해봤는데 괜히 우쭐해집니다.
“그럼! 아주 멋져! 나도 직접 날아보고 싶어.”
노란 고무공이 독수리에게 말합니다.
“말도 안 돼! 넌 날개가 없잖아.”
독수리가 펄쩍 뜁니다.
“괜찮아, 날 놔 줘.”
노란 고무공이 진심으로 부탁합니다. 독수리는 잠시 망설이다 움켜쥐고 있던 발에 힘을 풀어서 노란 고무공을 떨어뜨립니다. 굉장한 속도로 노란 고무공이 떨어집니다. 멀리서 독수리가 날갯짓으로 작별인사를 하는 게 보입니다. 이건 나는 게 아니고 떨어지는 거야, 노란 고무공은 두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안 아프게 떨어지려고 바람의 도움을 받습니다. 바람이 공원 잔디밭에 노란 고무공을 떨어뜨려줍니다. 통, 통, 통, 통, 통 노란 고무공은 여러 번 몸을 튕기고 나서야 겨우 진정합니다. 다행히 다친 데는 없는 것 같군요.
겨우 진정이 된 노란 고무공에게 지나가던 고양이가 콧잔등으로 비벼대며 킁킁 냄새를 맡습니다.
“하하, 간지러워, 그러지 마!”
노란 고무공이 고양이에게 부탁합니다.
“넌 뭔데 하늘에서 떨어진 거지?”
고양이가 신기하다는 듯 묻습니다.
“글쎄……, 사람들이 날 ‘공’이라고 부르던데? 그 이상은 나도 잘 몰라.”
노란 고무공은 사실대로 말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고?”
고양이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노란 고무공이 움찔합니다. 자신을 좀 더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 굴러다닐 수 있어. 바람의 도움도 받을 줄 알아.”
“그래?”
고양이가 흥미로운 듯 노란 고무공의 말을 열심히 듣습니다. 신이 난 노란 고무공은 더 많이 자신을 설명하고 싶어졌습니다.
“아이들은 날 좋아하나 봐. 그런데 난 아이들이 싫어. 너무 귀찮아.”
“나도 그런데……”
고양이의 맞장구에 노란 고무공은 더 신이 나서 떠듭니다.
“예쁜 코스모스도 날 좋아해. 나보고 놀러 오라고 했거든. 또 독수리하고도 친해. 그 독수리가 하늘을 날게 해줬어. 하늘을 나는 건 대단히 멋진 일이야. 그런데 난 혼자서는 하늘을 날지 못해.”
“넌 참 재미있는 공이구나.”
고양이가 말합니다.
“그래! 난 재미있는 공이야.”
노란 고무공이 이제 자신을 알겠다는 듯 말합니다.
“그럼 나중에 또 보자.”
고양이가 작별인사를 하고는 부드럽게 움직이며 사라집니다.
“잘 가!”
노란 고무공도 고양이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떽떼굴 떽떼굴 굴러갑니다. 굴러가면서 생각했습니다. 다음에 만나는 친구한테는 방금 만난 고양이 얘기도 해줘야지, 굉장히 부드럽게 움직이는 고양이를 알고 있다고, 그 고양이는 다른 친구의 말을 아주 잘 들어준다고, 그리고 이제부터는 나를 ‘재미있는 공’이라고 소개해야지, 하면서 말입니다. ▣
'창작 동화♡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떡은 딱 500원 (0) | 2017.12.18 |
---|---|
끼리끼리 (0) | 2017.12.17 |
학교 가기 싫은 이유 (0) | 2017.12.17 |
아이스크림 가게의 뚱보 아줌마 (0) | 2017.12.14 |
나무늘보의 선택 (0) | 2017.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