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린의 갑질과 이근의 거짓말이 가세연에 의해 연일 폭로되었다. 이제 폭로 전문단체의 최고봉은 가히 명실상부 유튜브 가로세로연구소라 할 만하다. 유명인의 과거 폭로는 연예부장 김용호가 가세연에 존재하는 이유이며 가세연 구독자 증가의 핵심동력이다.
김용호는 조롱의 기쁨을 애써 숨기지 않으며 타깃 대상의 추락을 즐거이 주도한다. 김세의와 강용석의 열렬한 반응과 함께 이들 셋은 유명인의 감춰진 과거를 이불 먼지 털 듯 탈탈 터는 방식으로 그들이 선택한 정의를 구현하느라 방송이 기껍다.
그들에게 진보좌파는 죄악이다. 그러니 온갖 미사여구에 선동당하는 국민을 구원한다는 선도적 자세로, 마수에 걸린 대깨문들에게 현실을 직시케 한다는 미명하에 보수우파의 속을 시원하게 해준다. 우리가 잘못된 게 아냐, 인간은 다 이기적인데 안 그런 척하는 놈들이 위선적인 거지, 그렇게 듣고 싶은 말을 좌파 까기로 대신해준다. 그러면 수퍼챗으로 보답이 빵빵하게 돌아온다.
물론 갑질은 근절돼야 하고 거짓말로 얻은 이득은 환수되어야 한다. 당연한 얘기다. 불공정한 세상이 지긋지긋한 건 배경 없고 돈 없는 무지렁이 백성이 더하다. 그래서 유명인이 내로남불에 걸리면 대중은 가차 없이 그간의 애정을 몇 배의 증오로 환불받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평소 미움받는 인사들이 이럴 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증오로 치환시킬 애정이 원래 없으니까.
가세연의 폭로는 실시간 라이브 방송이 4-5만이 될 만큼 충분히 이슈적이고 제대로 자극적이다. 거기다 취재나 제보에 의한 자료 제공이라 뇌피셜만은 아니니 제법 뉴스답다. 그간 가세연이 건드린 일들에 비해 고소 고발이 적은 것도 거기서 터트린 사건들이 뇌피셜만은 아니란 생각을 갖게 한다.
가세연은 ‘문화전쟁’이란 말을 자주 쓴다. 좌파가 잡은 문화판의 주도권을 우파가 찾아와야 한다는 건데 그런 문화전쟁의 일환에 좌파 유명인의 침몰이 있다. 그들이 진보적 발언을 했거나 진보측 인사들과 친하다는 이유는 대의를 제공하고, 틈틈이 좌우 상관없는 유명인의 갑질과 거짓말 폭로는 명분으로 사용된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해자가 존재하는 한 가해자의 반성 없는 과거는 처벌받아 마땅하다. 사기공화국이란 오명을 생각하면 과거청산 없이는 우리 미래가 갑갑할 것이란 생각도 든다. 동시에 진부한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해도 우리 삶이 경직되고 뻑뻑댈 것이란 생각도.
그래서 가세연의 조롱은 정당할까? 나꼼수가 낄낄거리는 화법을 선보였을 때 젊은 층이 환호했던 건 비판에 대한 새로운 행태가 신선했고 그 당시 언론의 자유가 지금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통제된 사회, 눈치 보는 사회에서의 낄낄거림은 일면 저항의 의미가 있다. 반면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에서의 낄낄거림은 그냥 조롱이고 비아냥이며 저급한 전략이다. 이건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 곧 태도의 문제니까.
그러니까 문제의 본질은 대놓고 선택적 정의를 주장하는 조롱이 아니라, 그것이 먹히는 사회 분위기 내지는 대중의 현실 인식이란 것이다. 너나 나나 할 거 없이 내가 속한 울타리 안에서만 풍요로우면 정의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한 선택적 분노 역시 막을 방법이 없다. 편 가르기가 일상인 사회에서 인간은 어느 쪽 그늘이든 선택하기 마련이다. 혼자서 땡볕에 서 있으면 쓰러지기도 쉽지만, 그보다 더 위협적인 건 결국 맹수들의 먹잇감이 되기 때문이다.
'경계인이 된다는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어 '꼰대'의 진화와 함정 (0) | 2020.11.21 |
---|---|
죽음보다 두려운 늙음 (0) | 2020.11.02 |
강요당하는 행복 (0) | 2020.10.31 |
1인 가구 시대가 올지 몰랐다 (0) | 2020.10.29 |
경계인으로 산다는 것 (0) | 2020.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