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2019년, 2000년대가 시작됐다고 신기해했는데 벌써 20년이 흘렀다. 그새 가장 크게 변한 건 뭘까? 그건 아마도 관계의 양식이 아닐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방식과, 관계를 유지하는 형태와, 관계에 대한 기대 같은...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인터넷만 있으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 수 있고, 그렇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도 알 수 있다. 내가 필요로 하는 웬만한 콘텐츠는 유튜브에 다 있고, 나와 취향이 같은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 모여 있다.
상처에 굳이 면역력을 가질 필요도 없다. 최소한의 관계가 최선의 관계가 되고 있으니, 그만큼 타인과의 접점이 적어진 셈이다. 둘이어서 괴로운 것보다 혼자여서 외로운 게 낫다는 생각은 그런 타인과의 거리만큼 타자의 언어를 외계어로 만든다.
그러니 소통이 되지 않는다. 지구라는 동네에서 만난 외계인들끼리의 대화인데 무슨 수로 소통이 될까, 그렇게 언어를 잊어가는 사람 중엔 언어 대신 폭력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은 그들을 정신질환자라고 하며 경계하고 조심한다. 남의 언어가 해독이 안 된다고 상해를 입히거나 목숨을 빼앗는 것만은 모든 사회가 공통으로 금하고 있다. 그래도 그런 사람들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다. 그래서 더더욱 사람들은 최소한의 관계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다.
0과1의 세상은 땀과 피가 흐르는 세상보다 평화롭고 안전하다. 0과1의 세상에선 이타적인 사람, 따뜻한 사람, 유쾌한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이런 이질적인 질서가 낯설고 이 세계의 언어와 소통되지 않는 사람들은 악플러가 되거나 자신들만의 세상을 구축한다. 그러나 아직은 0과1의 세상이 세렝게티의 현장인 현실 세계보다 몇 배는 더 평화롭고 안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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