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유혹과 위험
부당함에 대한 인식은 상대적이다. 각자 가진 내공의 크기가 다르고 면역력의 정도가 다르니, 당연히 공정함의 기준도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경험치가 많을수록 그릇이 클수록 자기반성이 가능할수록 타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이 일반적이긴 하다.
그러나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잃을 게 많은 사람일수록 또는 잃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일수록, 갑질의 피해자가 되기도 쉽고 갑질로 진상을 떠는 사람이 되기도 쉽다.
소위 좋은 위치,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참아야 할 일이 많다. 또는 그만큼 비굴하게 참았기 때문에 부나 명예를 얻거나 유지할 수 있는 게 우리 사회다. 그러다 보니 쉽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치들에게 성질이라도 부려야 덜 억울한 것이다.
그래서 갑질은 보상심리와 궤를 같이 한다. 내가 애쓴 만큼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거나,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되면 그 억울함이, 별다른 노력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가학적으로 쏟아진다.
나는 이렇게 높은 곳에서도 힘들어 죽겠는데, 감히 저 까마득한 아래에서, 언감생심 삶을 여유롭게 살겠다고? 가진 것 적고 배운 것 적으면, 그만큼 더 고달프게 살아야 공정한 거 아냐?
갑질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갑질을 하면서도 못내 억울하다. 나는 공정함을 시전한 건데, 나만큼 양심이고 윤리고 다 버린 채 참고 살지 않는 사람들이, 나만큼 무릎이 나가도록 기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나만큼 권력자에게 내장 다 썩도록 아부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감히 나와 동등한 대우를 받으려 하다니,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쉽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가진 것을 다 빼앗지 않으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