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불행은 혼자 오지 않나
생각해 보면 내가 언제 제대로 현실감각을 가져본 적이 있던가 싶다. 땅을 보고 있을 때도 발이 땅에 닿지 않았고, 하늘을 보고 있을 때도 땅에서 그리 멀어지지 못했다. 내게는 DNA적으로 시온과 매트릭스를 구별할 능력이 없는 것 같다. 어린왕자에게 지구가 낯선 행성이듯이 내게 현실은 항상 몽환적인 세계다. 무더운 한여름 두서없는 낮잠처럼 나른하고 끈끈한 시간들, 그래서 과거에 발목 잡히지도 않지만 미래가 이정표도 되지 않는, 설계도면 없이 우연히 쌓이는 레고 같은 삶, 새삼 그것이 두려울 것도 슬플 것도 없다.
아프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어디쯤이 어떻게 아파야 하는지 그것마저 헷갈릴 때가 많다. 비명을 지르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들과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렇게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는 것, 다만 이제는 그게 버거워졌다. 혼밥 혼술이 트렌드가 되기 전에도 우린 늘 각각이 혼자였다. 더러는 태어나면서부터 대다수는 살면서 알게 되는 진실, 우린 대체로 거의 아무것도 나눌 수가 없다는 것, 기쁨을 나눌 땐 질시를 조심해야 하며, 슬픔을 나눌 땐 비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겪게 되면 더 이상 무언가를 나누려고 노력하지 않게 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누구는 혼자 울고 있으며 누구는 혼자 웃고 있을 것이다. 난 그저 그들 중 하나일 뿐.
인간에게 죽음이 있다는 건, 그래서 끝을 볼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영생이란 얼마나 끔찍한 형벌인가, 인간의 성정상 영생이 주어진다면 그 탐욕이 얼마나 더 잔혹스러워질까 상상하기도 무섭다. 100년도 못 사는 세상에서도 천만년을 살 것처럼 폭주하는 인간들이 진짜 영생의 시간을 살게 된다면 세상은 순식간에 지금보다 백배는 더한 아수라장으로 변할 것이기에, 부끄러워할 것도 지킬 것도 없는 세상에서 인간답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 질문조차 못 하게 될 것이기에.
그래서, 왜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가?
불행은 낱개로도 존재하고 묶음으로도 존재하는데 다만 내가 불행이 떼 지어 오지 않는 한 눈길을 주지 않아서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낱개의 불행 정도는 일상이 되어버린 것, 그래서 인식하지 못하다가 비로소 우르르 몰려오니 허걱 놀라는 것, 그 상태가 지금의 나, 그런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