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이 된다는 것

재보선 후유증, 팬심이냐 신심이냐

아난존 2021. 4. 13. 21:57

 

민주당의 재보선 완패를 둘러싼 해석이 흐드러지게 분분하다. 부산은 거의 더블 스코어로 떡패, 그러나 이보다 더 충격적인 건 서울이다. 18.32%포인트 격차라는 압도적인 표 차에 25개 지역구 전부 패배는 정치권이든 지지자든 그 결과가 무척 당황스럽다. 지겠지, 그래도 접전 끝에 지겠지, 하고 관성적으로 전망하던 사람들마저 화들짝 놀랐다. 그러면서 20대 남성의 국힘당 몰표가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아니, 60대 이상이랑 20대 남성이랑 정치 성향이 같다고? 이 무슨 세대 간의 벽을 허무는 대동단결의 연대감이냐.

 

돌발적인 실수에 의한 대형 산불 화재도 따져보면 원인이 한둘이 아니다. 가뭄이다, 초동대처가 늦었다, 관리 부실이다, 과태료가 약하다 등등. 하물며 선거처럼 온갖 욕망이 흐르고 고이는 행위에 원인 한둘 가지고 제대로 분석이 될 리 없다. 그러다 보니 갑론을박 이전투구 향연의 장이 며칠째 올림픽 기간의 성화처럼 불타오르고 있다. 쇳물을 만드는 용광로에 섞여 단일한 물체가 되려면 그만한 온도가 필요하다. 생존을 위협하거나 그에 버금가는 요소가 없는 한 촛불집회 때처럼 단일대오를 형성하긴 어렵다. 각자 개인은 자신의 삶에서 우선순위가 다 다르다. 돈이든 명예든 건강이든 마음의 평화든 주체적 삶이든 기타 등등 그 미묘한 차이로 인해 n명이면 n개의 욕망이 충돌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작금의 정치적 분열은 그래도 우리 사회가 아직은 안전하다는 방증이다. 더욱이 진영 내 분열과 다툼은 목소리를 내도 생존이 위협받지 않는다는 증거이니 그만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보다는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상대를 하찮게 취급하는 태도, 자신과 관점이 다른 생각을 틀렸다고 윽박지르는 습성이 문제다. 내가 옳다는 생각에 매몰돼 있으면 더이상 사유의 진화는 일어나지 않고, 그렇게 고착화한 신념은 맹목적인 신앙과 구분되지 않는다.

 

어떤 신앙인들은 몸만 현대에 살 뿐 정신은 중세에, 영혼은 고대에 갇혀 있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중세인의 모습으로 평등보다는 권위가 편하고 자율보다는 규칙에 익숙하다. 그래서 비행기 타고 해외 가는 고대인의 모습으로 호기심보다는 경건함을 앞세워 성지순례를 평생소원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과거의 시간대에 박제된 정신과 영혼은 변화된 세상에서 더는 진화하지 않기에 맹목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맹목성은 비판에 취약하기에 자신과 다른 의견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정치적 신념이란 게 그리 대단할 게 없다. 내가 억울하지 않은 사회가 공정사회고, 억울한 사람이 적은 사회가 정의사회다. 그런데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지하철 전도사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각계각층의 진영 내 지박령들을 보면 여기저기 진혼굿이 많이 필요한 사회인가 싶다. 죽은 것들은 보내줘야 한다. 그래야 새 하늘 새 땅이 열린다. 그마저도 천국은 아닌 것을. 그러나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덜 지옥 같은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