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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자매 vs 미나리, 교회가 갖는 의미

아난존 2021. 3. 3. 18:25

이미지 출처 : 다음 포털

 

영화 세자매나 미나리나 녹록지 않은 삶, 그러나 특별하지 않은 고통의 평범함, 그래서 상처가 일상화된,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나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룬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감내해야 하는 것과 그래도 가족이 있어서 버틴다는 통념 사이의 어느 지점. 그런데 그 지점을 떠받치고 있는 연결고리에 교회가 있다.

 

세자매에서의 교회는 위선을 생산하고 포장하는 최일선의 역할을 담당한다. 가정폭력으로 네 자녀의 인격을 망가뜨린 아버지는 교회 장로이고, 가식의 표본인 둘째 미연(문소리)은 교회 성가대 지휘자이며 매 순간 주님을 소환하는 열혈 신자이다. 동생한텐 언니가 늘 기도하는 거 알지?”, 언니한텐 교회 다녀야지.”가 입에 붙은 사람, 식사 전 기도를 못 하는 어린 딸을 그것도 못 하냐며 식사 때마다 윽박지르고 위협하는 인물이다. 그것이 신앙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약자에 대한 폭력이란 걸 의식하지 못한다.

 

미나리에서의 교회는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이민 간 교포 1세대들의 의지처로 등장한다. 그러나 병아리 감별 공장에서 만난 한인 여성은, 15명이면 이곳에서도 자체적으로 한인교회를 세울 수 있지 않냐는 모니카(한예리)의 물음에, 도시를 떠나서 여기로 온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서 온 것이라고 대답한다. 한인교회의 영향력과 부작용을 한눈에 짚어주는 대목이다. 자기 세계에 빠져 사는 미국인 일꾼이 제 몸보다 큰 십자가를 어깨에 멘 채 끌고 다니는 모습에서도 기독교 국가인 미국 사회의 불안함을 보여준다.

 

두 영화는 주제는 다르지만, 가족이란 울타리가 폭력과 보호를 동시에 수반하는 공동체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교회는 그런 폭력을 사랑으로 위장하는 권위의 생산지인 한편 그런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힘의 근원지로 등장한다. 다시 말해 악을 악이라 단죄하지 않는 대신 우리 내부의 보편적 악을 위선으로 포장하는 동시에 그런 위선마저 없으면 무너질 인생들의 마지막 의지처로 기생하는 것이다.

 

교회의 자화상은 그래서 쓸쓸하고 무섭다. 위선마저 없는 세상이 더 위험하지 않겠냐고 사탄이 빙글빙글 웃으며 우릴 조롱해도 나아갈 방향 따위 우리 인류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용기 없는 천사는 비열한 사탄에 불과하며, 무지몽매한 천사는 편협한 사탄과 다름없다. 그럼 용기 있고 지혜로운 천사는? 물론 그것이 가능하다면 좋겠다. 그리고 인류의 다수가 용기 있고 지혜로워진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당연히 그곳이 천국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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