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이 된다는 것

1인 가구 시대가 올지 몰랐다

아난존 2020. 10. 29. 16:25

 

한국인을 분노로 폭발시키고 도덕성을 마비시키는 건 역시 자녀 문제다. 교육, 취업, 병역, 세금 등 불법과 초법이 난무하는 이유의 정점엔 내 자식만은이란 신앙이 전제한다. 자녀를 위한 불법은 희생과 헌신이며 자녀를 위한 초법은 사랑과 정의이다.

 

나는 그게 두려웠다. 나라고 그런 관행과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자녀 없는 삶을 택했다. 맹목적으로 굴러가는 제도적 삶의 눈부신 절대성에 맞춰 살기엔 내가 너무 약하고 예민했기에 다른 선택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향, 이념, 계급, 성별 다 필요 없는 게 딱 두 가지인데, 그중 하나가 자식 문제고 다른 하나는 불륜 문제라고. 들키지 않고 할 수만 있다면 불법이 곧 초법이 되고 비법이 돼버리는 게 이 두 영역이다.

 

왜일까, 유독 한국인에게만 자녀 집착의 DNA가 따로 있어서 이토록 유난을 떠는 걸까? 대다수 한국인에게 자녀는 개별 독립체가 아니다. 자녀의 인격이 곧 부모의 인격이며 자녀의 성공이 곧 부모의 성공이므로 부모는 자신의 연장선에서 자녀를 인식한다. 그래서 곧잘 자기애와 자식 사랑을 동일시한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식은 사랑받을 자격을 잃는다.

 

독립된 인격체로 산다는 건 쉽지 않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일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그것 자체가 외롭고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의존해야 하는데 그게 부모 자식 간이라면 눈치 볼 필요가 없어진다. 대개는 부부간의 상호의존관계가 약한 경우일수록 자식에게 더 매달리기 마련이다.

 

내 존재를 확인받고 타자와 사회에 인정받고 싶은 마음, 그게 죄는 아니다. 그건 당연한 인간의 본성일 테니까. 그런데 그걸 자식에게 투영하는 것, 즉 자식의 성공으로 대리만족하려는 거 그건 죄다. 자식 농사 운운하며 부모가 자신의 약하고 부실한 뿌리에서 튼실하고 탐스러운 자녀의 열매를 기대하는 거, 그게 도둑놈 심보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자녀가 부모라는 뿌리에 접목되어 성장하는 이상 자녀는 자신만의 뿌리를 내릴 땅을 가질 기회를 빼앗긴다. 인간 각자가 개별 존재인 만큼 자신의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존재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부모는 부모대로 밑동이 헐고 허리가 휘고 자녀는 자녀대로 뿌리 없이 부모에게 기생하는 기이한 형태가 되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