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관계

좀비 형 인간

아난존 2017. 12. 13. 12:39



공장에 새로 온 좀비들은 현장에 배치되기 전에 먼저 신입직원 교육을 받는다. 그들은 부서별 작업복을 받기 전에 연수생 신분임을 알리는 하얀 가운을 입고 출퇴근한다. 이번 신입직원은 총 17명으로 뱀파이어 회장이 직접 뽑은 9명과 좀비 사장이 공채로 뽑은 8명이다. 좀비 사장은 40여 년 전, 자신도 이곳에서 연수를 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자 회장님의 은혜에 새삼 감격이 차올랐다. 자신이 굶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회장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 공장에 취직되지 않았다면 정글 같은 세상에서 어떤 야수에게 물어 뜯겨 진즉에 죽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인사부장의 불만을 모른 척하며 신입직원 교육은 항상 자신이 전체 일정을 도맡아 짜는 것이다. 시작이 중요하니까 신입직원은 일단 내 손을 거쳐야 한다는 게 좀비 사장의 신념이었다.


사장은 연수 장소에 일찍 와서 인사부원들이 제대로 일을 하는지 감시할 겸 미국에서 배를 타고 오느라 향이 박제된 차를 느긋이 마시며 설교 준비를 했다. 오늘 강의는 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우리 공장의 역사를 설교하는 날이다. 17명의 신입직원 좀비들은 단정하게 무릎 꿇고 앉아 사장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사장은 결기와 복종, 두 개의 멀어 보이는 감정을 공존하게 하는 무릎 꿇는 자세를 좋아한다.


우리 공장은 권력자의 비호 아래 세워졌습니다. 권력자는 지금도 회장님의 뒤에서 우리 모두를 돌보고 계십니다.”

사장은 이 문장을 말할 때마다 목이 메고 내가 이런 곳의 사장이란 사실에 자부심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번 신입직원들도 이 대목에서 어김없이 손바닥이 부서져라 박수를 치고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질러댔다. 좋아, 올해도 유능한 직원들이 왔군, 우린 이제 한 가족이니까 내가 이들을 이끌어야 줘야 돼, 사장은 책임감과 만족감에 얼굴이 상기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