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관계

'가짜왕' 제도의 한국판 속죄양 '조국'

아난존 2019. 9. 24. 03:53




고대의 가짜왕 제도, 그것은 속죄양 제도의 인신 공양 버전이다. 가짜왕으로 지명된 사람은 며칠간 호의호식 뒤 제의물로 희생된다. 우리에게도 인신 공양의 대표 심청이가 있다. 가짜왕은 공동체의 죄를 대속하는 존재고, 심청이는 공동체의 위험을 예방하는 존재라는 차이는 있지만, 불특정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란 점은 동일하다.

 

조국 딸의 입시문제가 왜 중도층을 동요시키는가, 어마 무시한 경쟁 사회에서 승자는 극히 소수인데다 그 소수마저 늘 불안하다. 전교 1등 하는 학생에게 물어보라, 행복하냐고, 그는 1등 자리를 놓칠까 매 순간 노심초사한다. 그럼 다른 학생들은? 당연히 자신의 한계에 일찌감치 부딪혀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2등은 1등에게, 3등은 1, 2등에게, 그렇게 주눅 들어 사는 게, 경쟁력 아닌 경쟁심만 부추긴 우리 사회 민낯이다.

 

과정 없이 결과만을 중시하다 보니 1등 아닌 노력은 죄다 패자의 몸부림이 되고, 유명인이건 일반인이건 학력위조가 관행처럼 익숙해졌다. 대놓고 졸업장을 위조하는 범죄자도 물론 있지만, 전문대면 슬쩍 동일명의 4년제로, 중퇴나 수료면 슬쩍 졸업으로 말해도 모른 척해 주는 게 미덕이 돼 버렸다. 일단 유명해지면 눈감아주는 풍토도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만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든 악덕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유난히 입시부정에 민감하다. ? 억울하니까, 1등 지키느라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린 게 억울하고, 1등 못 해봐서 평생 자괴감에 억눌린 게 억울하고, 공부 못해서 허구한 날 비교당하며 주눅 들었던 게 억울하고, 내 자식만큼은 공부 잘했으면 싶었는데 그게 맘대로 안 돼서 억울하고, 내 자식 명문대 못 간 게 사회 탓인 거 같아서 억울하고온통 억울한 거투성인데 이 억울함을 어쩌랴.

 

그래서 가짜왕의 희생이 필요하다. 소소하게 잘못들을 나눠진 우리는, 그것은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면죄부를 대신할 속죄양이 필요한 것이다. 때마침 평소 입바른 소리 잘하는 사람이 대속물이면 가짜왕으로 더없이 적절하다. 그에게 죄가 얼마나 있는지, 정말 죽을 만큼 큰 죄를 지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동안 잘난 척해서 우리의 심기를 은근슬쩍 불편케 했으니, 이참에 우리 모두의 죄를 단박에 지고 화형당하면 그뿐이다.

 

조국 사태로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진단다. 아직 의혹뿐인데도, 너무 일방적으로 당하는데도, 살아 있는 권력이라고? 돌아선 사람들은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검찰과 언론은 기득권 카르텔의 구성원이거나, 구성원이고 싶거나, 그래서 그렇다 치고, 소위 실체 없는 중도파는 무엇 때문에?

 

억울해서이다.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 허세도 좀 부려보고 허영도 좀 떨어보지만 영 마뜩잖다. 남들도 다 눈치가 빤해서 적당히 속아 주지만, 그 속이 또 다들 빤해서 절대로 믿어주진 않는다. 그래서 영 삶이 개운치 않은데 조국이란 속죄양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 이때다 싶어 나의 억울함을 모두 속죄양에게 던져 대속물로 만들어야겠다! 대충 거짓말로 얼버무리며 살아온 꾸깃꾸깃한 내 삶을 남의 다리미로 펴고 싶은 심리, 투명한 날것의 진실이 불편한 나의 삶에 상큼한 면죄부를 주는 행위, 나는 적어도 잘난 척 바른말은 안 했어, 안심하며

 

노무현, 노회찬에 이어 조국까지 속죄양이 된다면, 흙탕물 세상에서 뒹굴어도 진흙 한 방울 묻지 않는 신선이 아닌 한 절대 바른말 못 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게 무슨 문제냐고? 왕따와 태움이 생태계 유지를 위한 인류 문화이고, 약육강식이 자연스러운 인간계 질서라고 주장한다면 문제는 없다. 그런 사회가 지옥이라고 말해본들 무슨 소용이랴, 타인을 착취할 권리를 보장하는 게 자본주의라고 믿는 사람들이 다수인 한, 지옥에서 함께 뒹구는 것도 민주주의를 선택한 시민들의 연대책임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