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관계

‘조국 사태’로 드러난 레고형 진실

아난존 2019. 9. 6. 06:54




확증편향, 유튜브의 성장과 더불어 이 말이 우리에게 일상의 공기처럼 익숙해졌다.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에 따라오는 부작용, 그러니 나쁜 게 맞다, 그런데 좋은 것을 어쩌랴, 일단 마음이 편한데? 내 생각이 옳다고 맞장구쳐주니 연대의식도 쏠쏠한데? 현실 인간들 눈치 볼 필요 뭐 있어, 인터넷상에 나의 동지가 수백부터 수십만까지 짱짱히 존재하는데.

 

원래 사람은 그런 거야, 그걸 여태 몰랐어? 참 끔찍한 말인데도 너무 쉽게 통용된다. 대체 뭐가 원래 그렇다는 건지, 피해자를 조롱하는 심리가 혐오감이란 걸 알고는 있는 걸까? 물론 약자에 대한 혐오심리도 개인마다 역사가 있고 각자의 사정들이 다 있는 것이니 한마디로 싸잡아 비판하긴 어렵다. 다만 이 혐오감이 확증편향을 더욱 튼튼하고 강력하게 만든다.

 

이제 진실의 가치는 내가 속한 세계 또는 속하고 싶은 세계의 질서에 복무하는 수단일 뿐이다. ‘사실이란 눈속임으로 진실이란 허상을 만들어 이를 우상 삼아 각자의 종교를 만든다. 취향 공동체 무리마다 유튜버 교주가 있고, 자신을 받드는 신도가 늘수록 교주는 비평 대신 예언을 하고 해설 대신 감정을 분출한다. 그렇게 해도 아멘 소리 복창하는 신도들이 있기에, 행여 금송아지를 하사하시는 구글의 분노를 사서 광고가 끊길까, 오로지 노딱(노란딱지)이란 금단의 열매만 두려울 뿐 그 외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다.

 

금송아지를 쫓는 유튜브만 진실을 제작해내는 것도 아니다. 이미 금송아지를 금궤에 가득 가지고 있는 치들과 그러고 싶은 치들이 뒤엉켜 사실이란 자재로 각자 완전히 다른 진실이란 집들을 지어낸다. 한 사건을 전혀 다른 진실로 만드는 창의적 세계에서 사실은 선택적으로 수집되고 진실은 원하는 대로 조립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레고의 세계가 현실이 되고 그런 현실 속에서 나의 정체성이 견고해진다. 교주의 뇌피셜이 신도들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승화되고, ‘뇌피셜자체가 진리의 말씀으로 강림하기도 하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공용어는 사회성을 잃고 창의성을 획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