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튜브와 김제동과 자본주의 시장질서
보람튜브가 유튜브 수익으로 강남에서 95억짜리 빌딩을 샀다고 와글와글 시끌시끌하다. 왜? 그 보람이가 6살이라서? 콘텐츠의 질이 아주 뛰어난 것도 아니라서? 월 수익이 수억도 아니고 수십억이라서? 아동학대로 고발당해서?
얼마 전 김제동은 높은 강연료가 문제 되어 보수의 집중포화 공격을 받았다. 왜? 지자체 주관인데 1-2시간 강연에 천오백여 만 원을 받아서? 국회의장의 망치와 목수의 망치가 왜 차이가 나야 하냐고 했던 과거 발언 때문에? 진보는 역시 가식적인 위선자들이라서?
이렇게 한꺼번에 나열해 놓으면 논점의 층위가 얽혀서 결국 상투적인 진영 논리에 갇혀 버린다. 그래서 평소 자신의 취향인 좋고 싫음이 그대로 가치로 치환되어 옳고 그름이라 믿어 버린다. 믿음, 그러니까 신념 내지는 종교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차근차근 따져 보자.
일단 자본주의 시장질서를 옹호하는 전제는 공정한 경쟁이다. 여기서 ‘공정한’은 불법이 아니면 되고, ‘경쟁’은 뒷거래가 아니면 된다. 즉, 불법적인 뒷거래가 아니면 나머지는 개인의 선택 영역이란 것이다.
이 기준에서 보면, 보람튜브는 아동학대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콘텐츠의 질이야 시장이 선택할 일이고, 수입이 많은 거야 그만큼 정직하게 세금 내면 되는 거니 오히려 국익에 도움이다. 유튜브 수익구조란 게 내국인을 넘어 전 세계인이 십시일반 수익 창출에 동조해 주는 시스템이니, 이왕이면 우리 국민이 돈 많이 벌면 좋지 않은가, 그게 국위 선양이지, 뭔 상대적 박탈감? 그건 지질한 비교의식이 부른 시기심일 뿐 그냥 부러우면 부러워하자.
다만, 세상사 그렇게 간단치 않아서 빛이 강할수록 그늘도 짙으니 매 순간 모든 선택은 본인의 책임이란 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다시 말해, 어떤 가치를 최우선으로 놓고 살지는 각자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다음 김제동의 문제는 살짝 더 복잡한데, 그건 김제동이 그동안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쳐온 폴리테이너이기 때문이다. 연예인이 자신의 소신에 맞는 정치적 목소리를 내든, 사회 참여를 통해 공공성을 주도하든 그건 개인의 선택 문제이다. 그로 인한 이익도 불이익도 자신의 행위에 대한 결과는 본인의 책임 영역이며, 폴리테이너든 뭐든 결국 연예인의 강연료는 시장이 결정할 일이다.
그렇다, 시장! 시장에서 원하는 수요가 많으면 그만큼 공급자로서 위상이 높아질 것이기에, 그런 시장에 권력자나 공권력만 개입하지 않으면 문제는 없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김제동이 의심받고 있다. 쌍방 간의 합의된 계약에 의한 것이니 불법 행위는 아니지만, 정권 창출에 애썼다고 보은으로서의 뒷거래는 아닌지 하는 의심, 왜냐, 그의 강연료가 기업이 아닌 지자체에서 나왔기에, 지자체는 공공성을 위해 세금으로 운영되는 집단이기에, 강연자가 누구든 높은 강연료만큼 공적 이익이 충분히 계산된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요구된다. 이에 대해 공무원들은 일반 기업보다 훨씬 더 신중하고 세심한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폴리테이너에 익숙지도 관대하지도 않다. 그러다 보니 연예인 개인의 정치적 발언에 대중의 반응이 적대적이기 쉽다. 다만, 과거 발언 때문에 연예인으로서의 상품가치가 하락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개인 본인이 책임지면 될 일이다. 대중에게 노출된 유명인은 지지자의 신뢰와 인기로 상벌이 정해지는 거 아닌가, 따라서 이를 두고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논리적 오류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