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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끝끝내 부정할 때 맞는 죽음의 예, 수전 손택

아난존 2019. 6. 14. 02:35




수전 손택의 죽음을 다룬 책, ‘수전 손택의 마지막 순간들’(이후, 2008)은 아들이 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라 가족의 죽음을 바라보는 그 복잡한 감정이 더 짱짱하고 촘촘하다. 자부심 강하고 고집 센 어머니가, 그가 아무리 문화 비평계에서 탁월한 지성인이라 해도, 아들에게는 얼마나 힘든 상대였는지 독자 입장에서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디나 양극화라지만 죽음도 참 양극화구나, 그게 내가 느낀 소감이다. 수전 손택은 너무나 당당히, ‘가 없는 세상이 상상되지 않는다고, 그렇게 철없이, 참 철없이도 말한다. 사춘기를 통과하면서 우리 대부분은 내 존재가 그닥 대단하지 않다는 걸 알아버리는데...

 

철이 든다는 건, 그것이 반드시 자신의 의지만은 아닌 것이, 우린 대체로 외부 환경에 의해 밀려서 철들기를 강요받는다. 그렇게 강제적으로 어른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피해갈 수 없으니까 수용하는 거고, 어차피 수용할 거라면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일 뿐, 삶이 고된 사람들조차 죽음이 편한 건 아니다.

 

죽을 만큼 아프거나, 죽을 만큼 힘들거나, 그렇게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도, 그래도 선뜻 죽음 앞에서 자연스럽지 않고, 어쩔 수 없이 두려운 게 인간이다. 그러니 수전 손택이 죽을 때까지 죽음을 인정하지 않은 채 죽지 않을 사람처럼 억척을 떨어댔다 해서 특별할 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전 손택처럼 삶에 마지막까지 분노하지 못한다. ? 그게 남은 이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거라서, 또는 앙탈을 부려도 받아줄 의사나 가족이 없어서, 그리고 대개는 온갖 치료방법을 써볼 만큼 돈이 없어서, 더하여 강한 의지를 발휘할 만큼 맘껏 자기 의지대로 살아본 기억이 없어서...

 

그래서 그렇게 사회적으로 성공하려고 몸부림치는 것일까, 죽음도 거부할 만큼 강한 삶의 애착을 느끼려고? 살려고 부득부득 달려드는 강렬한 욕망을 가져보려고? 그러려면 돈이든 명성이든 참아주는 주변인이든 뭐든 하나는 필요하니까.

 

그러나 누가 뭐래도, 삶에 대단한 애착을 가지고 끝끝내 죽음을 거부하다 죽는 선택 역시 본인의 몫이다. 다만, 그런 이들은 자신의 죽음을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이 진심으로 애도해주지 않아도, 그래서 임종을 지켜준다거나 곁에서 따뜻하게 마무리를 해준다거나, 그러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말 일이다. 자유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르듯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들은 남들에게도 그럴 권리를 주어야 공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