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탄생과 진화
너는 사탄이야! 이 말은 우리 사회에서 ‘너는 빨갱이야’와 유사한 기능을 발휘한다. 그러니까 ‘사탄’이란, 세상 사악한 존재로 당장 짓밟지 않으면 내가 무참히 당하는, 끔찍하게 무섭고 혐오스러운 대상인 것이다. 대체 사탄이 뭐길래?
일레인 페이절스는 『사탄의 탄생』(루비박스, 2006)에서 유대교의 사탄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설명한다. 요지만 정리하면, 민수기와 욥기에서의 사탄은 하느님에게 순종하는 종이었는데, 신명기에 이르러 하느님의 존재를 위협하는 우상으로 진화한다. 그래서 신명기에서는 우상의 척결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그러다가 스가랴(즈카르야)서에서 사탄은 내부의 적으로 진화한다. 즉, 이민족의 문화 및 상업 관행을 채택하는 교파가 사탄으로 신의 적대자가 되었다. 그렇게 이민족보다 같은 유대인들과 더 많이 싸우는 이들 분리파는 자신들의 적을 배교자라 공격하고, 그들이 악한 세력의 유혹에 넘어갔다고 비난했다.
그러니까 ‘사탄’은 고정 개념으로 사용된 용어가 아니라는 게 핵심이다. 히브리 성경이나 주류 유대교 신앙에서 사탄은 서구 기독교 세계가 알고 있는 악의 제국의 지도자로 적대적 영의 군대를 이끌고 신과 인간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구약 후반부에서 신의 대적자가 된 후 그런 이미지가 신약에서 강화된 것이다.
윌리엄 그린이 그랬단다, 사회는 타자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날조한다고, 우리의 경우 한국전쟁의 연장선에서 북한군을 늑대로 표현했던 시절이 있었다. 예를 들어, 1978년에 개봉한 극장판 반공 애니메이션 ‘똘이장군’에서 주인공 똘이는 인격화된 붉은 늑대들과 싸운다. 불과 40년 전만 해도 우리 국민들은 북한군이 우리와 동등한 인간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분법적 사고는 서구사회를 이끌어온 지배적인 사유구조이다. 그 기반에는 기독교의 선악 구분 개념이 있었고, 그런 기독교의 대립구조를 강화한 배경에는 이스라엘의 바빌론 유배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포로기 시절에 접한 선진문물 중에는 조로아스터교가 있었다. 선과 악의 뚜렷한 대결구조를 강조하는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유대교가 받았을 것이라 보는 견해는 그리 새로운 주장도 아니다.
내가 선한 쪽에 서려면, 즉 내 생각과 행동에 더 많은 정당성을 부여하려면, 나와 맞서는 상대가 극악할수록 좋다. 왜냐, 그래야 내가 더 돋보이니까, 해리 포터에 볼드모트가 없다면, 해리 포터는 존재 이유가 사라지고 만다. 서구, 특히 영국의 전통적 세계관이 집약된 ‘해리 포터’를 생각해 보라, 선악의 극렬한 대립 구도에 죽음 후 부활하는 장면까지.
인류학자들은 대개의 민족이 두 개의 이원적 대립, 그러니까 ‘인간 대 비인간’과 ‘우리 대 그들’로 구성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인류학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경험에서 사람들이 적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취급한다는 것, 특히 전시에 그런 성향이 더욱 강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영화 ‘아바타’에서도 인간은 영적인 존재인 아바타를 괴물로 취급한다. 그래야 쉽게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립 구도는 그런 인식이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무엇 때문에 강화되고 유포되었는지를 따져 볼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사탄 역시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존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