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신드롬과 프란체스코 교황
유시민은 지루하다고, 그를 지지하지만 책이나 방송에서 그가 하는 말들, 그건 너무 뻔해서 안 본다는 어느 지인의 말을 듣고 내가 한 말, 그런 당연한 생각이 희소한 세상이니까, 기득권층에 안주할 수 있는 위치인데도 그들과 야합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든 깨달음, 그거였구나! 내가 프란체스코 교황의 아주 당연한 말들에 왜 감동하지 않는지, 세계평화에 대한 교황의 염원은 일개 시민의 마음과 똑같은데, 왜 교황이 말하면 세계가 감탄하는지...
유시민이 유튜브 시사 영역에 도전장을 내밂과 동시에 그 장을 점령하면서 보수에 밀렸던 유튜브의 시사 지형에 변화를 예고했다. 나 역시 유시민을 좋아하지만, 그간 그가 나온 시사프로를 즐겨 보진 않았다. 유시민이 하는 말은 상식과 원칙에 기반한 것이므로 첫 문장을 들으면 마지막 문장이 예측되기도 한다만, 그보다는 그의 이런 당연한 말들이 너무나 힘겹게 전달되는 토론의 장을 지켜보는 것이 불편해서였다. 그냥 하면 되는 말들을 상대의 억지 다 들어주며 생떼를 논리로 미화시키고, 굳이 상대의 언어로 전환해서 대화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게 힘겨워서였다. 상대의 언어도 자신의 언어로 치환시키는 사람이 노회찬이었다면, 자신의 언어를 상대의 언어로 번역해서 전달하는 사람이 유시민이다. 나는 이런 유시민의 배려가 감탄스러우면서도 답답했다. 왜냐면 나는 유시민을 그의 항소이유서로 알게 된 사람이니까, 그 유명한 마지막 인용 구절, 네크라소프의 시구,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문장으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거였다! 유시민처럼 똑똑하고 유명한 사람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게 고마운 거다. 보수야 기득권의 욕망이 대놓고 이념이니 그렇다 치고, 정의 운운하는 진보도 자기들만의 리그에서 욕망 싸움을 하는 무리들이니, 국회의원 숫자 늘리자는 데 반대하는 대중들이 식자층은 우매해 보이겠지만 그 마음이 오죽하면, 숫자 늘려서 개별 특권 줄이자는 진보의 주장이 조삼모사로 들린다는 거 그들은 알까? 개별 특권 줄여서 계파 특권 늘이는 게 국민이랑 뭔 상관인데? 그런 마음 드는 거, 진보니 식자니 하는 사람들은 알까?
그런 틈바구니에 유시민이 그래도 독야청청 존재하기에 그래서 고마운 거다. 그의 말투가 어쩌고 표정이 어쩌고 하기 전에, 보수고 진보고 워낙 자신들 욕망에만 충실하니, 그 욕망이 나와 내 가족에 국한됐든, 나와 내 가족과 내 소속단체로 확장됐든, 그 소속단체가 국가가 아니면, 국민의 입장에선 어느 쪽도 마음이 안 가는데, 그래도 국가라는 공동체와 그 구성원에게 고른 애정이 있다고 믿어지는 사람이 유시민이니 그에게 마음이 가는 것이다.
프란체스코 교황이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말을 로마가톨릭의 수장으로서 하니까 감동이듯이, 교황이 세월호 유족을 만난 일이 일대 사건이듯이, 그게 뭐라고, 그럼 매일같이 자원 봉사하던 사람들은 인간 아니고 천사? 하느님? 쯤 되는 건가, 일개 서민이 하면 그냥저냥 선량한 일도 교황이 하면 엄청난 이야기가 되어 사람들을 감화시킨다. 왜? 권력자는 자신의 권력에 취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니까.
씁쓸하지만 이게 인간이다. 나 역시 권력자라면, 유명 인사라면,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는 게 인간의 얄팍함 아닌가, 나의 삶이 남루하기 때문에, 내가 무명이기 때문에, 나는 정직할 수도 상식적일 수도 있다는 거, 이게 축복인지 저주인지 알면 뭐할까, 그런 게 인생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