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의 설계 원리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는 사람과 대화하는 건 힘들고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힘들고 두려운 일은 자기 확신에 찬 사람과의 대화이다. 그 옳다는 생각이 자신의 이익을 보장한다면, 그리고 그 이익이 정의로 이미 치환된 상태라면, 그런 사람과의 대화는 공포영화가 현실이 된 느낌, 그것과 비슷하다.
전도가 곧 구원인 특정 종교 단체의 전도 논리도 그렇다. 나는 구원받았으니 이 은혜로 타인도 구원받아야 하는데, 이때 더 많이 전도할수록 나의 구원력이 상승한다. 나는 오로지 타인을 위해 전도한다고 스스로 믿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나의 구원이 전제돼 있다. 전도 한 명당 구원 포인트도 한 단계 오르니 사람이 대단히 소중하다.
이와 동일한 논리가 다단계 회사에도 적용된다. 내가 부자 되는 법을 알았으니 이 방법으로 타인도 부자 되게 해주고 싶은데, 그러려면 회사가 요구하는 구매 조건에 맞춰야 한다. 나는 나 혼자 부자 되자고 이러는 게 아니다. 다 같이 잘 살고 싶은 것이다. 더욱이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평등하게 돈으로 환산되니 사람 자체가 소중할 수밖에 없다.
당신을 위해서야, 이 말의 공포성은 이 말이 진심이라는 데 있다. 나한테 좋은 것이니 당연히 당신한테도 좋은 것이다! 내게 유익하니 네게도 유익하다! 이 간단한 진리를 상대가 거부하면 상대는 구원받을 기회를 놓친 사탄이 되거나, 일확천금의 기회를 놓친 무지한 인간이 된다. 그러니 어디까지나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너, 당신이 문제다.
그런데 왜 이런 부류가 점점 늘어나는 것일까? 도대체 그들은 어디서 이런 확신을 투여받는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견고한 관 속에 가둔 것일까? 물론 그 사연은 제각각 다르겠지만, 그렇게 관 같은 방에 갇혀 나오지 못하도록 설계된 곳, 그곳이 바벨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