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관계

모든 관계는 상처를 남긴다.

아난존 2019. 1. 6. 08:55




깊은 관계는 깊은 상처를 남기고 얕은 관계는 얕은 상처를 남긴다. 깊은 상처는 억울함과 절망감으로 사고를 마비시키고, 얕은 상처는 공허함과 상실감으로 의지를 약하게 하기에, 그러니 모든 관계는 상처를 남기는 것, 그러니 모든 관계는 흉터가 문신처럼 남는 것.

 

우리는 11어의 시대를 살고 있다. 내 경험의 세계라는 바벨탑 속에 갇혀 나가지도 못한 채 상대의 언어가 해독이 안 돼 내 언어로 각색해서 간신히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오해하고 착각한 상태, 그리고 그조차 어느 문장이 오해이고 어느 문장이 착각인지 알지 못해서, 대화가 계속될수록 의심과 불신은 오히려 더 커진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나만큼 상대도 어리석고 무지하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위로가 될까, 나만큼 상대도 내 언어가 해독이 안 돼 당황스럽고 두렵다고 하면 그나마 연대가 될까, 나만큼 당신도 고통의 바다에서 헤매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침잠해 있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연민이 생길까.

 

바벨탑의 문이 열려도 우리는 그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 밖의 세상이라 해서 나와 언어가 같은 동족이 있으리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판도라의 상자 안에 희망 하나를 가둬두고 사는 것이 고문이라 할지라도, 그 상자를 완전히 열어젖힌 후 희망을 찾아 나섰다가 그것마저 허상임을 깨닫게 될까 봐, 그건 더 무서운 공포이기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