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인간

예수, 진보, 가난, 억울함

아난존 2018. 12. 23. 17:02




인류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인물은 나자렛의 청년 예수이다.

그는 약소국 이스라엘의 변방 시골 마을에서 생부가 누군지도 모른 채 태어났다.

그래도 자신을 장자로 인정해준 양부 요셉이 있었기에 예수는 성실한 목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예수가 설교자의 삶을 살고자 했을 때 그의 생모 마리아와 동생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예수는 집안에서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이었으니까.

 

그러나 예수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중 연설가로 성공을 거둔다.

예수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가족을 포함해서,

가난하고 억울하게 사는 모든 이었으니까,

그것이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 거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가 조금만, 아주 조금만 보수적이었다면, 그렇게까지 기득권층에 미움받지는 않았을 텐데.

그랬다면 그는 그럭저럭 유명한 설교자로 대중들의 추앙을 받으며 명대로 살았을 텐데.

 

예수는 민중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민중이란 가난해서 억울하고,

억울해서 정의롭지 못해도 괜찮은 피해의식 가득한 집단이란 걸.

 

그런 걸 알면서도 예수는 민중이 기득권층에 휩쓸려 자신에게 돌을 던질 때도 그들을 사랑했다.

왜 그는 이토록 어리석고 이기적인 무리에게 약했을까.

 

가난해서 억울하면 약간 불의해도 괜찮은 걸까,

왜냐면 부자면서 더 불의한 인간들이 수두룩한 세상이니까?

 

배신당할 걸 뻔히 알면서도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 않았던

청년 예수의 그 고집을 한번 곱씹어 보았다.

왜 그는 그렇게 무지할 만큼 우직했을까,

무엇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