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관계

죽음으로부터의 소외

아난존 2018. 11. 14. 22:38





우리나라 자살률이 높은 거야 2005년부터 13년간 OECD 가입국 중 압도적인 자살률 1위였던 것으로 증명됐고, 올해 간신히 2위가 된 것은 리투아니아가 지난 5OECD에 가입한 덕분이다. 1위와는 도긴개긴 2위고, 3위와는 큰 차로 2위니, 명불허전 우리가 여전히 자살률 높은 나라이긴 마찬가지다. 2016년 기준 10만 명당 25.8명으로 하루에 40명 정도가 자살한다고 한다.

 

자살이 윤리적이냐 그딴 거 따지지 말자. 생존본능을 역행할 때에는 오죽하랴, 누가 누구의 죽음에 왈가왈부할 수 있겠나, 누구도 대신 나의 삶을 살아주지 못하는 것처럼 누구도 대신 나의 죽음을 죽어줄 수 없는 것을, 그러니 쓸데없는 논쟁 말고, 무엇이 보다 인간적인 선택인가를 생각하자.

 

안락사 인정은 요즘 대세다. 우리나라도 올해부터 소극적 안락사가 인정된다. , 연명 치료를 안 하면 죽을 걸 알면서도 가족 간 합의가 되면 안 할 수 있다. 그냥 죽음을 그렇게 기다리는 거, 적극적 안락사가 약물 투여처럼 죽음에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데 비해 소극적 안락사는 죄의식이 덜할 수 있다.

 

이렇게 안락사는 존엄사라 하여 인권 차원에서 인정해 주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당연한 방향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살할 권리이다. 스위스에서는, 오로지 스위스만 조력자살이라고 해서 자살을 합법적으로 돕는다. ‘펜토바르비탈이란 백색 가루 수면제를 먹으면 잠자듯이 편안히 죽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죽고 싶다는 의지만으로 조력자살을 승인해 주지는 않는다. 의사의 조력자살 사유가 있어야 한다. 안락사와 차이가 있다면 안락사는 보호자가 결정하고, 조력사는 환자 본인이 결정한다는 거, 그렇다면 무엇이 더 인권적인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자신이 결정권을 갖는 것, 그게 더 인간답지 않을까, 내 목숨인데 정작 내 자신은 죽을 자리 죽을 시간을 몰라야만 인간적인 것일까, 아니면 내 육체에 대해 스스로 의사표시도 못 할 정도가 돼서 겨우 타인이 결정해줘야 죽을 수 있는 거, 과연 그게 더 인권을 지키는 것일까.

 

사실 진짜 문제는, 자살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사회란 게 문제지, 삶이 고통스러워 죽음이 불가피한 사람들에게 고통 없이 죽을 권리를 주는 게 문제가 아니다.